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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런 시급!

입력
2015.03.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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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여러분.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시급은 5,580원입니다. 5,580원 이런 시급! 쬐끔 올랐어요 쬐끔. 370원 올랐대. 이마저도 안주면 히잉.”

예능프로에서 애교 넘치는 병영생활로 ‘예비역’아저씨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가 모델로 나오는 방송광고 대사다. 특히 목소리에 힘을 줘서 “이런 시급!”하고 외치는 게 욕설처럼 들려 귀에 쏙쏙 꽂힌다.

요즘 최저시급 인상이 미국 일본을 비롯 전세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월 의회에서 행한 신년 국정연설에서 “1년 내내 일해 1만5,000달러를 벌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한 후 “할 수 있음 한 번 해봐라”고 일갈해 주목을 끌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7.25달러로 2009년 이래 변동이 없는 연방정부 최저시급을 10.1달러까지 대폭 올리는 ‘텐텐 법’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는 지난해 10월부터 최저시급을 780엔으로 16엔 대폭 올린 데 만족하지 않고, 줄기차게 기업을 향해 임금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은 물론 중국도 지난달 최저시급을 줄줄이 인상했다.

전세계 정부가 최저시급 올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다. 불황극복의 단골 대책이던 재정확대는 대부분 국가가 재정악화로 사용할 여력이 없고, 금리인하도 이미 0%에 근접하게 낮췄으니 더 낮출 수 없다. 결국 임금을 비롯해 가계소득을 올려서 소비를 늘리고 이를 통해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는 선순환을 만들자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우리나라도 지난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올해 최저시급을 7% 이상 인상하겠다고 시사했다. 7.6% 이상 올라야 6,000원을 겨우 넘는 것인데, 그래 봤자 여전히 OECD회원국 중 바닥권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나마 최저임금도 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0만명이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들은 주로 식당 같은 영세자영업체 취업자들이다. 이런 업체 고용주들은 살인적인 경쟁 탓에 수억원 자본을 투입하고, 휴일도 낮 밤도 없이 일하면서도 한 달에 300만원 가져가기가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최저임금을 올린다면 기로에 서 있는 영세업자들에게 타격을 줄뿐 경기부양 효과는 거두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가계소득 증가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중산층 소득증대에서 시작해 그 효과를 저소득 계층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소득층과 달리 중산층 소득은 단기간 내 증대시킬 마땅한 정책 수단이 별로 없다.

최 부총리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과감한 임금인상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측 대표인 한국경영자총연맹은 지난주 회원사에게 “올해 임금을 올릴 경우 1.6% 범위 내에서 인상하라”고 권고하며 최 부총리의 호소를 사실상 거절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줄줄이 임금 동결을 결정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정부가 임금상승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아직 남아있다. 조만간 시작될 임금협상에서 노조가 교섭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노동3권 보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여기에 때마침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을 위한 노사정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노사정위는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발족했으며, 노동계의 양보를 얻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아 노사정위가 이번에는 비정규직 소득과 권리 향상을 비롯해 중산층 근로자의 소득증가를 위해 사용자측의 양보를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정부는 이를 도와야 한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보이지 않는 수요ㆍ공급의 원칙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선택을 할 때다.

정영오 국제부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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