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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직후 태어나 상실 세대 기억을 형상화한 대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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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직후 태어나 상실 세대 기억을 형상화한 대표 작가"

입력
2014.10.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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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작가.”

스웨덴 한림원은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그를 이같이 평가했다.

20세기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모디아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7월 30일 파리 교외 비양쿠르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알베르 모디아노는 유대계 이탈리아인 사업가로, 나치 점령 시기에 파리에서 벨기에 영화 배우인 루이자 콜페인을 만나 신분을 감춘 채 함께 살았다. 검거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했던 아버지와 프랑스 국적이 없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모디아노가 작품의 주제를 정체성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부모의 별거, 남동생의 이른 죽음으로 우울한 유년기를 보낸 모디아노는 고교 시절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레이몽 크노에게 기하학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문학에 눈을 떴다. 십대 때 크노의 소개로 당대의 저명한 문인들이 모두 모이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모디아노는 1963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하고도 공부를 계속하는 것보다 문학에 열정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소설 집필을 시작한다. 첫 소설 ‘에투알 광장’이 1968년 크노의 주선으로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모디아노는 로제 니미에상과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1972년 ‘외곽순환도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1975년 ‘슬픈 빌라’로 리브레리상을 받은 그가 여섯 번째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출간했을 때 프랑스 언론은 모디아노가 이 작품으로 마침내 자국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받을 것으로 예견했다.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 맞았고 이 작품은 “현대 프랑스 문학이 거둔 가장 큰 성과”라는 극찬을 받았다.

파트리크 모디아노 '혈통'
파트리크 모디아노 '혈통'
파트리크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리크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리크 모디아노 '도라 브루더'
파트리크 모디아노 '도라 브루더'
파트리크 모디아노 '그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파트리크 모디아노 '그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흥신소에서 일하는 한 퇴역 탐정의 이야기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주인공은 은퇴 후 한 장의 사진과 부고만을 근거로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들을 만나며 퍼즐처럼 지난 삶을 짜맞추지만 그렇게 완성한 그림은 더욱 불확실한 모습으로 주인공을 허무에 빠뜨린다. 평단은 이 작품이 2차대전의 참화 속에서 태어나 강제로 과거를 빼앗긴 세대와 전쟁 이후 기억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프랑스 사회, 나아가 인간 보편의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독창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비극적인 개인사를 모티프로 현대사회를 통찰하는 수많은 작가와 모디아노의 차이점에 대해 “성찰의 거부, 페이소스의 거부, 센티멘털리즘의 거부”라고 평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소설로 썼다고 자랑하는 사람들과 달리 모디아노의 힘은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기를 거부했다는 것, 자신의 행위를 해석하기를 거부했다는 데 있다. 문학이 우리의 황폐한 삶을 이야기해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시위다.”

스웨덴 한림원 비서 페테르 엥글룬드는 “모디아노의 작품은 늘 같은 주제, 즉 기억과 정체성, 상실, 탐색의 변주”라며 “그는 뒤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같은 작가”라고 평했다.

개인과 시대의 기억에 대한 모디아노의 집요한 추적은 이후 발표한 작품 ‘도라 브루더’(1997), ‘신원 미상 여자’(1999), ‘혈통’(2005)에도 일관되게 그려졌다. 1984년 그의 전 작품이 프랭스 피에르 드 모나코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프랑세즈도 2000년 그의 전 작품에 폴 모랑 문학대상을 수여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비롯해 모디아노의 작품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모디아노는 2차 대전의 우연성 속으로 함몰돼 과거를 상실한 세대의 기억을 형상화한 대표 작가”라며 “르 클레지오, 미셸 투르니에와 함께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 작가로,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모디아노는 앙드레 지드, 장 폴 사르트르, 르 클레지오 등에 이어 프랑스 작가로는 열한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 30여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한국에서는 대부분 문학동네가 번역 출간했다. 현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도라 브루더’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한밤의 사고’ ‘혈통’과 그림책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등이 나와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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