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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곳이 없어요..” 저소득층일수록 역경 닥치면 고립무원

입력
2016.0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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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 10명 중 1명꼴

“도움 청할 사람이 없다” 응답

소득 낮은 집단선 30% 육박

사회적 유대감 낮고 안전망 허술

일시적 곤경에 노숙 위기 겪기도

공동체적 삶과 밀접한 관련성

도움 줄 사람 많을수록 행복도 높아

경제적 문제 등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족을 포함해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한국일보의 행복 국제비교조사 설문결과 우리 국민 10명 중 1명(9.8%)은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자신의 소득계층이 하층이라고 여기는 집단에서는 이 응답 비율이 28.7%까지 올라간다. 일본(21.1%), 덴마크(16.1%), 브라질(8.2%)보다 우리 저소득층이 사회적 지원에서 훨씬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도움을 청할 일이 더 많은 계층일수록 정작 기댈 곳이 없는 ‘양극화 사회’의 패러독스다.

경제적 지지기반 특히 취약

하루마다 방세를 내는 서울 종로구 쪽방에 거주하는 40대 이모씨. 2년 전 실직 후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퇴원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몇 달을 근근이 버티다 손을 벌릴 지인이 없어 구청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구청 측은 긴급 주거지원은 3개월 이상 월세가 체납됐을 때, 생계지원 역시 1년 내 실직만 가능하다며 도움을 거절했다. 월세보다 긴급한 일세에다 실직 기간이 더 길어 생계가 막막한데도 규정상 지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주거 위기만 넘기면 어떻게든 자립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사적 지원은 물론 공적 지원도 받지 못해 어려운 처지가 계속되고 있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은 “가난한 상태라는 게 돈만 없는 게 아니라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는 형편”이라며 “저소득층에게는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사회 안전망에 구멍이 뻥 뚫려 있다”고 말했다.

구멍 뚫린 사회적 관계망의 결과는 자살률로 나타난다. 한국은 하루 꼴로 38명(2014년 기준)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11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기록 중이다. 김광석 삼정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낮은 사회적 유대감과 부족한 사회 지원 관계망 형성이 자살을 부를 정도로 정신을 메마르게 한다”고 말했다.

관계 맺기 활발할수록 행복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는 특히 한국인의 행복감과 큰 연관성을 갖는다. 행복 국제비교조사 결과 도움 받을 사람이 5명 이상이라는 집단에서는 행복하다는 사람이 43.7%나 됐지만, 전혀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집단에서는 3.9%만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일본은 각각 39.3%, 7.7%로 상대적으로 강한 일본인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엿보인다.

이러한 사회적 지원은 도움을 받는 이의 정서적 안정과 함께 어려움에서 빠져 나오는 회복력과 연결된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ㆍWHR)’도 강조하는 행복 요인이다.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는 2008~2010년에 금융위기로 국가 파탄 상황에 극심한 경제적 곤란을 겪었지만 국민의 행복감은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럽국가 중에서도 이 두 나라는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많았던 게 그 배경으로 꼽혔다. 이들 국가는 경제위기도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기댈 언덕의 정도에 따라 사회적 회복 탄력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사회 행복도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설비 일을 하는 김주원(33)씨는 지난 여름 급성 C형 간염이 발병해 병원신세를 졌다. 부모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 마땅히 간호해 줄 사람도 없었지만 30명에 이르는 산악 동호회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문병을 왔다. 미혼인 그는 “당장 몸이 아픈데도 기댈 곳이 없다 보니 서러웠는데 큰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본질적으로 ‘행복 전구’를 켤 수 있는 것은 관계 즉 사람”이라며 삶의 우선 순위에서 사람을 뒤로 미루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지원ㆍ신뢰가 행복 시너지 효과 내

사회적 관계는 공동체적인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행복도 7 이상과 이하인 집단으로 나눠 살펴본 결과, 덴마크를 제외하면 같은 저소득층이라도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이 더 행복감을 느꼈다.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아시아 문화권에서 사회적 관계 정도는 개인의 행복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동호회나 시민단체, 종교단체, 자원봉사단체 등 공동체 모임 참여는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의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80여 개국을 대상으로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소를 분석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는 소득수준보다 행복감이 더 높은데 사회 시스템과 공동체적 분위기가 작동한 때문으로 분석된다”며 “타인에 대한 이해 폭이 커지면 그만큼 사회 문제를 함께 풀기도 수월해지고 그런 사회적 신뢰와 지원이 개인의 행복감을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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