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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웬춘 겪고도… 살인예고 전화 끊어버린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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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웬춘 겪고도… 살인예고 전화 끊어버린 112

입력
2014.08.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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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서 조선족 4차례 전화 뒤 흉기로 여대생 찔러

경찰 오판… "잡아가라" 전화에 위치파악도 못해

신고 시스템 개편 불구 안일한 대응 탓 살인미수 '방조'

경찰은 우웬춘 사건을 벌써 잊은 것인가. 사진은 지난 2012년 엽기적인 '수원 살인사건'의 살인범 오원춘)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찰은 우웬춘 사건을 벌써 잊은 것인가. 사진은 지난 2012년 엽기적인 '수원 살인사건'의 살인범 오원춘)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찰이 4차례나 살인을 예고한 112신고를 접수하고도 출동지령을 내리지 않아 결과적으로 살인미수 사건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12년 4월 경찰의 늑장 출동으로 20대 여성이 살해 당한 ‘우웬춘 사건’ 이후 112신고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도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3일 전북 군산에서 귀가하던 여대생 오모(18)씨가 만취한 조선족 근로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씨는 이날 오후 5시30분께 집에 돌아가기 위해 군산시 경암동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200m가량 뒤쪽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무서워 돌아보지 못했다.

버스정류장에 다다랐을 즈음 오씨는 용기를 내서 돌아봤고 술에 취해 흉기를 든 한 남성을 발견한 순간, 이 남성은 흉기로 오씨의 오른쪽 허벅지를 한차례 찌르고 달아났다. 이 남성은 지난해 10월 18일 방문 취업 비자로 입국해 군산에서 노동일을 하는 조선족 심모(40)씨였다.

문제는 이 사건은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지만 범행을 막을 기회는 많았다는 점이다. 범인은 범행 전 전북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 네 번이나 전화를 걸어 범행을 예고했고, 범행 후에도 두 차례나 범행사실을 알려왔다.

하지만 경찰은 피해자와 목격자가 신고를 한 뒤에야 현장에 출동하는 허술함을 보였다. 심씨는 범행 직전인 3일 오후 4시29분 처음 전화를 걸어 “경찰서에요. 여보쇼”라며 전화를 끊었다. 30여 초 뒤 “여보세요. 사람 죽여도 일 있냐고(괜찮느냐)”고 다시 범행 예고 전화를 걸었다. 또다시 오후 4시36분 전화를 건 심씨는 “신고하면 내가 살 수 있겠냐고”하며 횡설수설했다.

이어 오후 4시42분 심씨는 “내가 사람을 죽이고 내가 신고하는 거예요”라고 말했고, 경찰은 위치를 파악하려 했으나 심씨가 말꼬리만 물자 “한번 더 하면 처벌받아요. 그만해요”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경찰은 사건을 목격한 시민과 피해자 오씨가 신고를 하고 나서야 순찰차를 현장에 보냈지만 심씨는 이미 현장을 벗어난 뒤였다. 이후 그는 오후 5시54분과 6시8분 두 차례나 더 112상황실에 “돈 없으니까 구속해라”고 전화를 했으나 경찰은 범인의 위치 파악에 실패했고, 심씨가 오후 7시쯤 군산경찰서를 찾아 자수하고 나서야 검거할 수 있었다. 오씨는 큰 부상을 입고 인근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우웬춘 사건 이후 112신고 대응 체계를 통합ㆍ표준화하고 신고 접수 매뉴얼을 일원화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에 착수했다. 당시 112신고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살인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12신고 접수 시 현장 출동 여부를 가리는 사건 코드분류제도 도입됐다. 긴급성 판단을 척도로 코드1은 즉시 출동을 필요로 하는 사건, 코드2는 출동을 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사건, 코드3은 현장 출동이 불필요한 사건 등으로 세분화했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코드3 결정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 주취자의 전화 형태와 비슷해 출동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여러 정황상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4차례나 같은 사람에게서 살인을 암시하는 전화를 받고도 경찰이 대수롭지 않게 대처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신고 접수 직원이 사건의 긴급성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면 유기적인 초동 조치 시스템도 얼마든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셈이다.

전북경찰청은 신고 전화를 받은 112종합상황실 근무자 4명을 상대로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

군산=최수학기자 shchoi@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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