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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촛불집회] 다시 광장에 선 시민들…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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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촛불집회] 다시 광장에 선 시민들…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입력
2016.12.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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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밤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쏘아 올린 폭죽이 하늘에서 터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김정현 기자
10일 밤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쏘아 올린 폭죽이 하늘에서 터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김정현 기자

영하의 날씨를 뚫고 80만(경찰 추산 12만명) 민심이 광장에 섰다. 주말마다 타오른 6번의 촛불은 끝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하지만 시민들은 “다시 촛불”을 외쳤다. 구태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박근혜식 정치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10일 오후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는 전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축하하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수많은 덕담과 위로가 오갔다. 축배는 잠시뿐이었다. 거대한 촛불행렬은 일주일 전처럼 청와대 앞에서 승리와 분노의 함성을 함께 쏟아냈다. 시민들은 탄핵 이후 시민사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며 민주주의가 완성될 때까지 촛불을 꺼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0일 오후 한 시민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반석 기자
10일 오후 한 시민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반석 기자

탄핵 가결 후 더욱 엄중해진 구호

이날 집회에서는 “촛불이 탄핵을 이끌어 냈다”는 자부심과 흥분이 넘쳐났다. 본 집회 자유발언에 나선 우지수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탄핵안 가결은 국회의 승리가 아니라 추위를 뚫고 모인 촛불의 승리”라며 “우리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박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광장이 힘이다” “우리가 주인이다” 등의 구호에서 보듯 시민들은 스스로 이뤄낸 성과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시민들은 국민이 주체가 되는 ‘주권 정치’를 선언했다. 본 집회에 앞서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선언대회’에서는 “국민주권 시대는 특출한 몇 사람이 앞장서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주권자 국민이 앞장서고, 정치권도 시민사회운동도 그 뒤를 쫓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왔다.

국정을 농락한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는 훨씬 강해졌다. “황교안도 물러나라” “내각 총사퇴” ”우병우를 구속하라” 등이 탄핵 구호를 대체했다. 참가자들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결정이 날 때까지 박 대통령뿐 아니라 정치권을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겠다고 했다. 김우 416연대 상임운영윈원은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같은 사람을 법정에 세워야 하고 박 대통령의 공범들까지 처벌해야 평등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를 향한 함성도 멈추지 않았다. 오후 4시 광화문광장에 집결한 20만명의 시민은 지난주 집회와 마찬가지로 자하문로와 효자로, 삼청로 세 방향으로 인간띠를 만들어 청와대를 동ㆍ남ㆍ서쪽 100m 거리에서 포위했다. 본 집회가 마무리된 후 2차 행진이 시작되자 촛불 행렬은 어느덧 80만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횃불을 들고 행진에 동참한 회사원 원모(42)씨는 “국회는 국민의 뜻을 받아 들였으니 이제 헌법재판소가 응답할 차례”라며 “횃불로도 안되면 들불로 박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 광화문광장에서 1.3㎞ 떨어진 헌법재판소는 이날 처음 촛불 세례를 받았다. 시민 3만여명은 2차 행진 도중 재동에 있는 헌재에 도착해 “국민의 명령이다. 헌재는 탄핵을 인용하라”고 촉구했다. 오후 8시45분 청와대와 200m 거리의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는 승리의 함성이 박 대통령에게 들릴 수 있도록 수십 발의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인 10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곽주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인 10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곽주현 기자

“촛불은 끝이 아닌 시작”

본 집회가 시작되기 전 시민들은 광장 곳곳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특히 이번 사태가 박 대통령 탄핵이나 정권교체로 끝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탈바꿈시키려면 ‘광장의 정치’가 지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시민 토론회에 참가한 문재훈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과거 친일파, 독재세력 조력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과거청산을 하지 못해 현 사태로 이어진 것”이라며 “촛불집회를 계기로 낡음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예술학교 교수도 “재벌지배구조 해체, 새로운 노동권 복원, 학벌과 인맥으로 이뤄진 권력구조 청산 등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해결책이 광장에서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주에 이어 1987년 민주화세대와 2016년 청년세대의 만남도 성사됐다. 87체제 대표로 참석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민주화 항쟁 당시 6ㆍ29 선언을 통해 시민사회가 승리했다고 섣불리 단정하는 우를 범했다”며 “박 대통령 탄핵 가결 역시 끝이 아니라 미래를 제대로 고민하고 부패에 연루된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청산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광장에서 함성을 지르기는 쉽지만 일상에서 기득권의 착취에 당당히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린 잘못된 권력구조를 바로잡아야 개인이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 김재현(25)씨도 “얼마 전까지 박 대통령 하야 만이 해결책이라 믿었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과감해진 풍자 속에 신명의 한마당

주말마다 참가자들의 마음 속 응어리를 달랬던 풍자와 퍼포먼스도 과감해졌다.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주변 바닥에는 서청원, 김진태, 윤상현 등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 16명의 사진이 붙었다. 시민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진을 발로 밟으며 분노를 대신했다. 퍼포먼스를 기획한 박모(45)씨는 “이런 사람들이 다시는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는 경고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자영업자 하모(40)씨는 닭발로 만든 진액 음료를 무료로 나눠줬다. 하씨는 “지치지 말고 힘내서 끝까지 가자는 생각에서 사비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 경찰차벽에는 박 대통령이 수감된 모습을 형상화한 풍자화가 내걸렸다.

인기 연예인들이 무대에 오르자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가수 DJ DOC는 서울광장에서 7차 촛불집회의 시작을 알렸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손가락에 장을 지지는’ 패러디 등 풍자 사진이 대형 스크린에 뜨자 시민들은 환호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본 집회에서는 가수 이은미가 공연 중 “박근혜를 끌어내라”고 외쳐 큰 박수를 받았다. 이광동(35)씨는 “지방에서 일을 해 처음 촛불집회에 나왔는데 탄핵 가결된 뒤여서 그런지 시민들의 얼굴이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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