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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군견(軍犬)의 퇴역

입력
2015.01.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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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용으로 군견을 키우고 있지요?”(야당의원) “그렇습니다.”(연구소장) “민간연구소에 무슨 군견이 필요합니까?”(야당의원) “….”(연구소장) 1988년 11월 3일 5공비리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있었던 청문위원과 일해재단 연구소장과의 문답이다. 청문회를 지켜보던 우리 부대 내무반에서는 ‘저 개가 왜 저기 있지’했다. 나흘 뒤 이어진 청문회에서 5공 시절 경호실장인 안현태씨는 “군견훈련소 협조를 받아 연령이 지난 군견을 구입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매매가 금지된 군견인데 ‘웬 구입?’. 강탈하다시피 재벌들로부터 받아낸 수백억원대 기부금에, 국가 소유인 외국원수 선물, 청와대 집기도 일해재단으로 흘러간 마당에 폐견(廢犬) 두 마리 가져가는 게 뭔 대수였을까.

▦ 그 두 마리가 ‘복 받은 견생(犬生)’이라고 생각했다. 무소불위 권력이 규정을 무시한 것이지만, 폐견으로서는 목숨을 부지하게 된 셈이니 그랬다. 셰퍼드 종인 군견은 여덟 살 정도면 용도폐기 된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게 일이라 체력이 부치게 돼 어쩔 수 없다. 수명이 12~15년 정도라니 인간 나이로 30대 중반에서 40대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좋게 말해 안락사지 무자비한 제거다. 그렇게 폐기되는 군견이 한 해 50~100마리 이상이었다.

▦ 모르긴 몰라도 자기가 죽는다는 걸 눈치채는 듯했다. 안락사를 시키는 테이블 위에 올리려 하면 거세게 발버둥을 쳤다. 옆에서 지켜보다 눈물범벅이 되는 군견병(兵)이 한둘이 아니었다. 수의관에게 “살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하는 병사도 없지 않았다. 규정이 있는데 받아들여질 리 없다. 제 새끼, 친구처럼 데리고 다니던 군견을 그렇게 보내는 일은 군견병에게도 꽤나 정신적 충격이다.

▦ 국방부가 군수품관리법 시행령을 개정, 12일부터 퇴역 군견을 민간에 무상으로 양도하기로 했다. 2년 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안락사와 동물실험이 금지돼 퇴역 군견에 대한 관리가 어렵게 되자 정책을 바꾼 모양이다. 충성심이 남다른 진돗개와 달리 셰퍼드는 친화력이 좋아 대개 1주일 내 주인으로 섬기고 따른다. 도시에서는 돌보기가 어렵겠지만 도시 근교나 농촌 주민에서는 좋은 벗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혹 몹쓸 장사꾼이 몹쓸 용도(?)로 끌고 가는 일이 없도록 잘 살펴야 한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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