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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대한민국, '모세의 기적'은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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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대한민국, '모세의 기적'은 상식이다

입력
2015.04.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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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응급환자 이송 중입니다. 길 좀 열어주십시오. 응급환자입니다."

지난달 15일 오후 7시께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안성 IC 부근을 달리던 구급차에서 급박한 방송이 울려 퍼졌다. 구급차에는 이틀 전 낙상해 후두부 부종 및 출혈로 의식불명 상태인 박모(78)씨가 타고 있었다. 전주의 한 대학병원에서 서울의 한 종합병원으로 긴급 이송을 하는 상황.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차량이 빽빽하게 들어찼던 고속도로 1ㆍ2차선이 좌우로 갈리며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운전자들이 앞다투어 길을 터주었고 박씨는 안전하게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았다.

주말 저녁 혼잡한 고속도로에서 행해진 운전자들의 작은 배려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박씨의 사연은 박씨의 둘째 아들이 포털사이트 다음아고라에 글을 올리며 화제가 됐다. 둘째 아들은 "아버님의 건강 상태가 급박해 일요일 저녁임에도 긴급 이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기우였다"며 "서울에서 전주까지 달리는 동안 배려해준 수많은 운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썼다"고 말했다. (▶ 관련 게시글 보기)

지난달 15일, 전주에서 서울까지 응급환자를 이송한 하나구급센터의 최윤홍(45)실장. 최 실장은 "구급차에 사이렌이 울리면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는 신호"라면서 "도로 위에서 구급차를 보면, 자신의 가족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배려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전주에서 서울까지 응급환자를 이송한 하나구급센터의 최윤홍(45)실장. 최 실장은 "구급차에 사이렌이 울리면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는 신호"라면서 "도로 위에서 구급차를 보면, 자신의 가족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배려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촌각을 다투던 당시의 상황은 정말 '기적' 같았을까? 당시 구급차를 운전한 최윤홍(45) 하나구급센터 실장은 "보통 전주에서 서울까지 장시간 이송을 할 때는 수차례 방송을 해야 하는데, 그날은 많은 운전자들이 자발적으로 양보를 해줘서 방송을 1차례만 했을 정도이니, 환자 보호자의 입장에선 '모세의 기적'처럼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탄 구급차가 이동한 거리는 전주에서 총 215.28km. 고속도로 상황이 원활하다면 약 3시간이 소요되지만, 일요일 저녁임에도 2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최 실장은 "주말 고속도로에서 극심한 혼잡을 빚는 안성IC-안성휴게소, 오산IC 부근, 서울IC-양재IC 구간에서도 운전자들이 지체 없이 길을 터줘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포항남부소방서 119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하던 중 도로위에서 운전자들이 진로를 양보해주는 모습.
지난 1월, 포항남부소방서 119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하던 중 도로위에서 운전자들이 진로를 양보해주는 모습.

박씨의 사연과 같은 '모세의 기적'은 훈훈한 미담 사례로 종종 화제가 된다. 최근엔 '부산 모세의 기적' '포항 모세의 기적' 등 구급차나 소방차 등 긴급차량들에 진로를 양보한 운전자들의 모습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돼 네티즌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모세의 기적'이라는 별칭처럼 현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일부 운전자들의 '나몰라라' 식 대응으로 긴급차량이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국민안전처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9구급차 이송환자 167만8,382명 중 32.5%(54만5,060명)가 응급환자에 해당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진로양보에 인색하다.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 119구급과의 방성환 소방장은 "전조등을 켠 구급차가 사이렌까지 울리며 주행할 경우 위급한 환자를 모시러 가거나 병원으로 이송하는 상황"이라면서 "대개 과다출혈 환자나 분만이 임박한 임신부, 심정지 환자여서 긴급한 상황인데 사이렌을 울려도 비켜주지 않는 운전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긴급차량 길터주기 요령. 국민안전처 홈페이지 캡처
긴급차량 길터주기 요령. 국민안전처 홈페이지 캡처

'모세의 기적'이 '기적'이 아니라 '상식'이 되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모세의 기적’이 계속되려면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 실장은 "구급차가 갓길로 달릴 거라는 오해는 금물"이라면서 "갓길에는 이물질이 많아 구급차의 타이어가 터지는 등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주로 1ㆍ2차선을 이용하고 있어 시민들의 양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방 소방장은 "시민들이 양보운전에 인색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양보운전을 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면서 "운전면허 기초교육 등에서 구급차 이송시 양보운전에 대한 안내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보운전을 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상황에 따라 긴급차량이 신속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차량을 비켜주면 된다. 방 소방장은 "일단 긴급차량의 사이렌을 듣게 되면 교차로나 일방통행로의 경우는 서행하면서 우측 가장자리로 일시정지해야 한다. 또한 편도 2차로에서는 긴급차량이 1차로로 진행할 수 있도록 일반차량은 2차로로 양보하고, 편도 3차로 이상의 도로에서는 긴급차량이 2차로로 주행할 수 있도록 1차로 및 3차로로 차량을 이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김연수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3)

▶'포항 모세의 기적'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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