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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도리질… 野 헛발질… 與 싸움질… 촛불민심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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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도리질… 野 헛발질… 與 싸움질… 촛불민심 타들어간다

입력
2016.11.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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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성층권인데, 정치는 지하에 있다. 촛불시위에서 민의를 확인하고도 정치권은 그 해법을 찾기보다 정국 혼란을 부채질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행동 불능 상태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은 ‘100만 촛불’의 민심을 못 본 채 외면하고 있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그러니 우리가 지켜야 한다”로, 비박계는 “그러니 퇴진이 답이다”로 갈릴 뿐이다. 국민의 근심을 보태기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야권이 똘똘 뭉쳐 해법을 제시하고 행동해도 모자랄 판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양자회담을 불쑥 제안했다가 균열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될 전망으로 밝혀진 가운데 14일 청와대 정문에 적막감이 흐른다. 고영권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될 전망으로 밝혀진 가운데 14일 청와대 정문에 적막감이 흐른다. 고영권기자

靑 “임기 마친다” 버티기

박근혜 대통령의 본심은 역시나 ‘버티기’였다.

박 대통령은 15일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검찰 조사를 피하면서 시간을 최대한 끌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국정이 마비되고 식물 대통령으로 불리는 치욕을 당하더라도 청와대를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속뜻인 셈이다. 최근 청와대 안에서는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임기를 채우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얘기들이 흘러 나왔다. 촛불 100만 개를 밝힌 성난 민심의 “퇴진하라! 하야하라!”는 함성을 박 대통령이 전혀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이다.

최순실(60ㆍ구속)씨의 국정농단 물증인 태블릿PC가 등장한 지난 달 25일 이후, 박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업무를 사실상 중단했다. 박 대통령은 내내 청와대에 칩거했고, 청와대 참모들은 쏟아지는 의혹 대응에만 집중했다.

청와대는 이 같은 국정 공백에 무책임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5일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정국 안정을 위한 후속 조치를 고심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3주째 똑 같이 내놓고 있는, 빈 껍데기 같은 답변이었다. 박 대통령이 검토하는 ‘모든 가능성’에 하야나 자발적 퇴진은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분위기다.

청와대는 국정 혼란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면서, 여론이 바닥을 치고 반등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정 대변인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박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제안했다가 마음을 바꾼 것을 비판하고, “야당도 정국 정상화를 위해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여야와 대선주자들이 내년 대선의 손익을 따지느라 청와대를 향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자중지란 하는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전략인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그간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하며, 박 대통령의 ‘선의’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유 변호사는 15일 “대통령이 임기 중에 수사ㆍ재판을 받으면 국정이 마비되고 국론이 분열된다”며 말을 바꾸었다. 박 대통령은 끝까지 검찰 조사를 피하며 시간을 끌려 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기자들의 질문도 피하는 박 대통령이 잔뜩 독이 오른 검찰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박 대통령은 “필요하면 특검도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이것도 시간을 벌기 위한 수사(修辭)일 가능성이 크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 마련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천막 농성장을 방문해 농성 참가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 마련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천막 농성장을 방문해 농성 참가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野 수습 의지 없이 ‘날 좀 보소’ 경쟁만

“야당 지도부와 잠룡들이 ‘날 좀 보소’ 경쟁만 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 후 야권의 대응 방식에 대한 정치권 관계자의 일갈이다. 야권 공조는커녕 ‘나홀로’ 영수회담을 추진하다 체면만 구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나, 말뿐인 수습책만 내놓으며 대선 전초전에 열을 올리는 야권 잠룡 주자들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정 혼란 사태를 주도적으로 수습하려는 노력 보다는 차기 대선의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적 셈법에 좌우되는 게 야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야당의 헛발질 행보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철회 사태에서 정점을 찍었다. 추 대표는 영수회담 제안이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고 해명했지만, 100만 촛불 민심 이후 제도 정치권과 시민세력의 공조 스텝을 꼬이게 했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당초 이번 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와 최순실씨 기소 여부를 지켜보며 ‘하야 민심’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박 대통령의 불법 행위가 명확해지면 탄핵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보고 정지 작업에 들어간 것인데, 추 대표의 돌출 제안으로 흐트러진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어제 사태는 매우 위험한 코미디였다”고 우려했다. 추 대표가 퇴진 당론을 고리로 야3당 및 시민단체와 머리를 맞대겠다고 뒷북 수습에 나섰지만, 개운치 않은 출발로 얼마나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야권 대선주자들도 자기 목소리 내는 데만 힘을 실을 뿐, 국정 수습 로드맵에 의견 수렴에는 나서지 못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후발 주자들이 촛불민심을 선점하고자 앞다퉈 ‘하야’ ‘탄핵’ 등을 요구하면서 선명성 경쟁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 하야를 가장 먼저 주장했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순위가 급상승한 게 과열 경쟁을 부추긴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국정 수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야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비상기구 제안도 경쟁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하나의 기구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답보 상태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6·10 민주화 항쟁 당시엔 직선제 쟁취라는 공동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현존 권력이 이미 무너지고 있어 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독자 플레이로, 면피용 대책을 내놓으며 사태 수습 시늉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심은 야권의 정치적 셈법에 갈수록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본부장은 “대통령 지지율은 5%로 떨어졌지만, 야3당 지지율은 합쳐도 50%에 불과하고 야당 주자들 중 과반 이상을 넘는 인물이 없다”며 “청와대가 버티는 것도 확고한 권력 이양 세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5일 오전 여의도 당사 대표회의실에서 자신의 사퇴와 비대위 구성을 촉구하는 원외당협위원장들을 면담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5일 오전 여의도 당사 대표회의실에서 자신의 사퇴와 비대위 구성을 촉구하는 원외당협위원장들을 면담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與 ‘한지붕 세 가족’ 점입가경

계파 별로 회의체를 별도 가동하는‘한 지붕 세 가족’ 체제가 계속되면서 새누리당 내홍이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15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3선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본인 거취에 대한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었으나 24명의 3선 의원 중 참석자는 안상수 의원 1명에 그치는 굴욕을 겪었다. 특히 친박 지도부에 같이 몸 담고 있는 조원진 최고위원도 불참해 친박계마저 등을 돌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 대표도 점차 고립무원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자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자신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광역단체장 출신 대선주자들을 고강도로 비판했다. 그는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선주자는 우리 당의 명예이자 자존심인데 네 사람의 지지율을 다 합쳐봐도 10%가 안 된다”며 “여론조사 지지율 10%를 넘기기 전에는 새누리당 대권주자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정현이 사퇴하라고 매일 페이스북에 올리더라”며 “젖먹이도 할 수 있는, 옹알이하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잘못하면 사퇴하라’는 건데 비전 제시는 아무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5%에 불과하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선 “앞으로 대통령 노력에 따라 회복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13일 당 해체를 선언한 비주류 진영은 친박 지도부의 버티기가 계속되자 이날 비상시국위원회를 발족, 사실상 당내에 ‘또 하나의 당’을 창당했다. 비상시국위에는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남경필ㆍ원희룡 지사, 오세훈 전 시장, 김문수 전 지사, 5선의 심재철ㆍ정병국, 4선의 김재경ㆍ나경원ㆍ주호영, 3선의 강석호 의원 등 총 12명이 대표 위원으로 참여했다. 비상시국위는 오는 16일 첫 회의를 열고 국정 수습 및 당 해체 방안을 논의한다.

이날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한 정진석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 불참 방침을 고수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원내대책회의에서는 박명재 사무총장이 정 원내대표의 최고위 참석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자 정 원내대표는 “저 좀 그만두게 해달라. 붙잡지 말라”고 거부했고, 박 총장이 재차 설득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가 최고위에 복귀해 문제 해결이 된다면 백 번, 천 번인들 왜 안 하겠냐.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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