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형 기자

등록 : 2016.04.30 11:00

[뒤끝뉴스] 책으로 판매하는 정부 보고서… 진짜 멋있나요?

등록 : 2016.04.30 11:00

지난해부터 온ㆍ오프라인 서점에서는 ‘10년 후 대한민국(사진)’이라는 제목의 정부 보고서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각계 전문가 15명으로 구성한 미래준비위원회(이하 위원회)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KAIST(한국과학기술원)과 함께 10년 뒤를 내다보며 우리나라에 적합한 미래상과 꼭 필요한 정책 방향 등을 제안한 보고서입니다. 지난해 11월 첫 번째 보고서에 이어 올해 2월 두 번째, 이달 세 번째 보고서가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각 권 가격은 1만5,000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KAIST 미래전략대학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판매되는 책과 구성ㆍ내용 등이 모두 동일합니다. 같은 책을 누구는 사서 보고, 누구는 무료로 보게 되는 것이죠.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 사람이 뒤늦게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일까요.

통상 정부 예산을 들여 만들어진 보고서는 대부분 무료로 배포됩니다. 정부 예산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구성되니, 예산이 투입된 결과물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셈이죠. ‘10년 후 대한민국’처럼 무료 배포와 판매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는 이례적입니다. 이에 대해 미래부와 위원회는 “보고서의 주제가 미래 전략인 만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공감과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판매를 병행하기로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무료 배포만으로는 홍보에 한계가 있어 미래 이슈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책을 찾아볼 수 있게 하려면 판매망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미래부 관계자는 “공공 데이터 개방 원칙에 따라 법적 문제는 없으며, 책 판매로 얻은 인세는 다시 책을 구매해 배포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 대해 돈을 지불할지 말지는 국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 인쇄본으로 소장하고 싶은 독자는 당연히 구입할 것이고, 한번 훑어보거나 업무 또는 학업에만 쓰고 말 독자는 무료로 내려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책에는 무료 다운로드에 대한 안내가 없습니다. ‘10년 후 대한민국’의 세 번째 책인 ‘뉴노멀 시대의 성장전략’ 출간을 기념해 지난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 참석한 대표저자 이광형(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위원장은 이 책을 왜 유료로 구매해야 하는지를 묻자 문제될 것 없다는 듯 웃으며 “멋있잖아요”라고 답했습니다.

이 위원장이 “멋있다”고 자평한 책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립니다. 예를 들어 책에는 “전문가 9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도출한 미래유망 10대 신서비스”가 담겨 있습니다. 10대 신서비스는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현금 없는 금융 서비스 ▦무인 네트워크 운송 서비스 ▦사물 인터넷 재난 대응 서비스 ▦건강수명 증진 서비스 ▦전력 충전 서비스 ▦그린 에너지 플랫폼 서비스 ▦인공지능 만능 전문가 서비스 ▦웨어러블 에너지 공급 서비스 ▦소셜 러닝 서비스 등입니다.

이날 브리핑에선 이들 10대 서비스가 미래가 아닌 현재 이미 국내외에서 활발히 제공 또는 개발되고 있어 새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한번쯤 다 들어봤던 내용”이라며 인정하면서도 “굳이 이번 보고서에 다시 모아 제시한 건 앞으로 더 집중해서 육성하자는 취지이고, 관련 부처에서 참고하지 않을까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운영비를 포함해 3억~4억원을 쓰는 위원회가 “들어본 내용을 모아 제시하는” 보고서를 내고 “멋있다”고 자평하는데 대해 공감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관련 부처들 역시 굳이 이 책을 통해서가 아니어도 이들 서비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과학계뿐 아니라 위원회 내부에서도 보고서 작성 방식이나 유료 판매에 대해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래 전략 보고서인 만큼 설문조사 이외에 다른 새로운 분석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거나 “굳이 책을 팔아 장사한다는 비판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등의 의견이 지금도 위원회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앞으로 2권의 책을 추가로 낼 예정입니다. 이어 출간될 책에는 이 같은 의문이나 비판들을 잠재울 수 있을 만한 혁신적인 미래 전략이 담기길 기대합니다. 미래부 관계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책에 안내하는 등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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