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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사물함실 vs 직장어린이집… 성신여대 '딜레마'

입력
2016.07.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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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직장어린이집 의무화

대학, 협의 없이 학생회관 선택

총학 “자치시설 부족한데..” 반발

미설치 사업장 절반, 장소 못찾아

“여건에 맞게 탄력 운영 허용을”

학생회관 직장어린이집 설치에 반대하는 성신여대 학생들이 지난달 12일 사물함실에 모여 농성을 하고 있다. 성신여대 학생회 제공
학생회관 직장어린이집 설치에 반대하는 성신여대 학생들이 지난달 12일 사물함실에 모여 농성을 하고 있다. 성신여대 학생회 제공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수정캠퍼스 학생회관 1층 사물함실에는 학생 5,6명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산한 캠퍼스에서 이들은 매일 밤을 지새우고 있다. 지난 4월 4일 학교 측이 ‘학생회관 사물함실 자리에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하고, 지난달 11일 공사 강행 계획을 일방 통보하면서 한달 째 계속된 일상이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사물함실은 600여명의 학생이 이용하는 편의 공간”이라며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학교 측이 언제 사물함을 들어낼지 몰라 4~10명이 항상 이 곳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성신여대가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결정한 것은 정부 방침 때문이다. 지난 2014년 5월 영유아 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여성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의무화된다고 발표했다. 전임교원을 포함, 전체 교직원 수가 578명(2015년 기준)인 성신여대가 어린이집을 마련하지 않으면 1년에 최대 2회, 회당 1억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문제는 학교 측이 학생회관을 어린이집 장소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학생들과 어떤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총학생회는 학교 측 공지 이후 학생들을 상대로 의견수렴과 공청회를 열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월 말 학생대표 몇 명 만 모아 한 차례 설명회를 했을 뿐이다. 이소현 총학생회장은 “2013년 학생회관을 리모델링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동아리방이 줄었는데 학생회관에 어린이집까지 들어설 경우 학생 자치시설은 아예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교 측은 교내 어린이집 후보 시설을 두루 검토한 결과, 학생회관이 가장 적합한 장소로 조사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연과학관이나 구 학생식당 등도 후보지로 검토됐지만 건물 안전도와 접근성을 따져 봤을 때 보강공사를 한 지 얼마 안된 학생회관 만한 장소가 없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성신여대 관계자는 “현재 사물함 이용률이 48%에 그쳐 자치공간이 없어진다는 학생회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어린이집을 둘러싼 잡음은 성신여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어린이집 설치 요건이 까다로와 다수의 사업장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 9조에는 ‘직장어린이집은 1층에 설치하고, 1층이 아닐 경우 두 곳에 출입구를 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어린이집 인근 50m 내에 공사장이나 주유소, 유흥업소 등 유해시설이 있어서도 안돼 도심에 위치한 사업장은 규정을 지키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서울 중구의 A금융사는 유흥가와 차량 유입이 많은 대로변에 있는데다 1층에 카페, 음식점 등도 입점해 있어 여태 어린이집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 서울 구로구의 B게임사도 사옥을 임대해 쓰고 있어 당장 어린이집 설치가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복지부가 올해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 177곳을 조사한 결과, 절반인 89곳이 ‘장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보육기반과 관계자는 “어린이집 설치가 여의치 않은 사업장은 두 곳 이상이 공동 운영하거나 직원 자녀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위탁 계약을 맺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직원들이 자녀를 각자 다른 어린이집에 보내는 상황에서 해당 어린이집과 일일이 보육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사업장들로선 부담되는 일이다. 도남희 육아정책연구소 기초연구팀장은 “대도시의 사업장 상당수가 직장어린이집 공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성신여대와 같은 갈등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며 “정부가 설치 요건을 일률적으로 정할 게 아니라 각 사업장의 조건에 맞게 탄력적인 운영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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