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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쓸쓸... ‘마당 암탉’ 황선미의 첫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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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쓸쓸... ‘마당 암탉’ 황선미의 첫 에세이

입력
2017.10.29 14:4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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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늘이 참…’ 출간

쓸쓸했던 유년시절 고백과

취미로 그린 그림 수록

동화작가 황선미의 첫 에세이집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 작가의 그림. 감, 호박꽃, 찔레나무 등 작가 주변의 자연을 소박하게 그렸다. 예담 제공
동화작가 황선미의 첫 에세이집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 작가의 그림. 감, 호박꽃, 찔레나무 등 작가 주변의 자연을 소박하게 그렸다. 예담 제공

한국 아동문학계 최초로 100만부 판매를 돌파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은 이라면 작가에 대해 내밀한 호기심을 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무정란만 낳던 암탉이 부화에 대한 열망을 품은 것부터 눈길을 끌지만, 뒤이어 나오는 추방, 불임, 남의 자식(!), 자살과 타살의 경계 같은 파격적 설정은 독자의 관심을 이야기에서 그 이야기를 짓는 사람으로 옮겨 놓는다.

황선미 작가의 첫 에세이집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예담)에서 그 호기심의 일부를 충족할 수 있겠다. 1995년 등단한 작가가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꺼내는 자신의 이야기에는 숨김이 없다. 결핍으로 가득했던 유년시절과 유명 작가가 된 뒤의 삶까지, 감추는 법을 모르는 그의 고백에 보는 이가 오히려 멈칫댄다.

“나의 10대는 결핍 투성이였다. 어디 그때만 그랬을까. 어느 날 갑자기 농촌 사회에서 중소 도시 변두리로 내몰렸던 성장기 전체가 박탈감뿐이었으니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뭐 하나 번듯하지 못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황선미 작가가 직접 그린 아버지의 모습. 용접공이던 아버지는 적은 월급에서 5,000원씩을 빼 딸의 책값에 보탰다. 예담 제공
황선미 작가가 직접 그린 아버지의 모습. 용접공이던 아버지는 적은 월급에서 5,000원씩을 빼 딸의 책값에 보탰다. 예담 제공

초등학교 시절 그는 반에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친구들과 마주칠까 봐 집에 박혀 슬픈 이야기 짓기에 골몰하던 소녀는 코피를 자주 흘렸다. 부러 지혈을 안 해도 코피는 멎었고 그는 그 힘을 활자의 마력에서 찾는다. “더 이상 나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지켜내게끔 붙잡아준 게 책이었다는 데에 나는 늘 감사한다. 가장 이지적인 보호를 받은 셈이다.”

용접공이던 아버지는 잡지든 무협지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 치우는 딸에게 미안해 집에 보내는 편지 말미에 추신을 달았다. “월급에서 5,000원은 선미가 보고 싶은 책을 사 보게 줘라.” 책에 주렸던 소녀에게 서재가 생긴 건 작가가 되고도 10년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천장부터 바닥까지 책을 꽂아 넣는 그가 느낀 건 충족감이 아닌 두려움이었다. 마음껏 엉뚱할 수 없게 된 나이,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 나이, 동시에 여전히 모든 게 흥미롭고 궁금한 나이. “나는 여전히 길 위의 어린아이이고, 저 너머의 세상에 뭐가 있는 궁금해 뒤보다는 앞을 보면서 간다.”

책에는 작가의 그림 20점이 처음 공개된다. 평소 그가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는 걸 안 편집자가 쑥스러워하는 작가를 설득해 내놓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감나무, 뒤뜰로 흘러내린 호박꽃, 뒷산에서 만난 찔레나무, 그리고 아버지의 손가락이 부러진 날 처음으로 잡아본 아버지의 손. 동화작가가 아닌 그림작가로서의 황선미도 소담하고 쓸쓸하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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