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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도 모르게 물가 올리기 나선 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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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도 모르게 물가 올리기 나선 기재부

입력
2015.12.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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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반영한 경상성장률 관리” 선언에 한은 반발 기류

“발표 직전까지 물가 협의하면서 일절 언급 안 해”

기재부 “물가관리도 재정정책 영역… 협의 대상 아냐”

“정부, 물가 내리려 금리인하 압박 등 통화정책 개입 우려”

“한은, 디플레 치료자로 역할 전환해 협조해야” 지적도

정부가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의 핵심인 ‘경상성장률(물가수준을 반영한 성장률) 관리’ 방침을 물가당국인 한국은행과 사전 상의 없이 결정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한은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한은은 물가목표 설정 및 관리라는 고유 영역을 정부가 침범했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19일 기획재정부와 한은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16일 공개한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그간 각종 정책의 기준으로 삼아 온 실질성장률에 더해, 앞으로는 경상성장률을 성장의 기준 지표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하지만 이런 내용을 한은과 사전에 협의하거나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상성장률은 소비자물가에 생산자ㆍ수출입물가까지 포괄하는 물가지수인 ‘국내총생산(GDP)디플레이터 상승률’을 실질성장률에 더한 값이다. 한은 담당인 소비자물가 외의 물가들도 경상성장률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결국 정부가 한은과의 상의 없이 별도의 물가 목표치를 설정한 모양새가 됐다.

정부의 경상성장률 관리 선언에 대해 한은은 “물가안정목표제 아래 (소비자)물가를 관리해온 한은의 임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 물가목표(2016-2018년 2%) 달성에 노력하며 경상성장률의 안정적 관리에 기여하겠다”(16일 장민 조사국장)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내부에선 예상치 못한 정부의 ‘기습’에 당혹해 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특히 정부가 경제정책방향 발표 이틀 전까지 한은과 내년부터 적용될 물가안정목표를 협의하면서도 경상성장률 얘기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경상성장률을 관리하겠다는 건 통화정책의 큰 틀을 바꾸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물가안정목표제는 그대로 두면서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는 물가 관리가 통화정책뿐 아니라 재정정책의 영역이기도 한 만큼 경상성장률 관리가 한은의 역할과 상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수 활성화 대책, 공공요금 조정 등 정부가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수단은 다양하다”며 “정부와 한은이 각자 역할을 다하며 물가관리 보조를 맞추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미리 통보하지 않은 데)한은이 섭섭해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한은과 꼭 협의해야 할 사안인지는 의문”이라며 “실질성장률보다 경상성장률이 중요하다는 정부 입장은 물가안정목표 협의 과정에서 충분히 전달됐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정부가 당장 내년도 경상성장률 목표를 내걸고 저물가 탈피를 공언하면서 물가안정목표제 아래 그간 “물가는 한은의 책임”으로 여겼던 체제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거시적 물가수준 관리(한은)와 미시적 물가안정(정부)의 역할 분담구도가 무너지며 물가당국 간 마찰이 심화될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정부가 현재 1% 안팎인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명분으로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완화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물가를 유심히 보겠다고 나선다면 통화정책으로 물가수준을 관리해온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한은이 물가 목표(2%)를 맞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므로 정부가 압박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물가 2% 상승은 어디까지나 중장기적 목표치로 기계적으로 따르진 않을 것”이라는 한은과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두 기관이 새 물가관리 체제 아래서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부는 총수요 확대, 한은은 통화정책을 통해 각각 물가관리에 나서는 만큼 특별한 갈등 요인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한은도 ‘인플레 파이터’에서 ‘디플레 큐어러(curerㆍ치료자)’로 역할을 전환하고 물가목표 달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정부가 물가당국인 한국은행과의 협의 없이 경상성장률 관리 방침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경환(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해 7월 최 부총리 취임 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물가당국인 한국은행과의 협의 없이 경상성장률 관리 방침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경환(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해 7월 최 부총리 취임 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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