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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영업자에게 희망을 주는 법

입력
2016.02.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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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작은 빵집이 문을 닫았다. 약 4년 전 그 빵집은 우리 동네에 들어 왔다. 반짝이는 은빛 제빵 기계가 가게의 절반을 차지하는 바람에 테이블은 두 개만 놓았지만, 그곳의 빵은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기꺼이 단골이 되었고, 개성 있는 빵집을 소개하는 책에 소개되는 등 그 곳은 우리 동네의 명소가 되었다.

운영이 어려워진 건 2년 전부터였다. 아마도 옆 동네에 효모 빵을 판매하는 가게가 들어선 것이 첫 번째 타격이었을 것이다. 새 가게의 빵은 유기농 식자재를 쓰고 버터 없이 만들어져 좀 더 건강식처럼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 가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결정적 타격이 이어졌다. 불과 한 블록 떨어진 빌딩에 강남의 유명 빵집이 분점을 냈다. 넓은 공간과 브런치, 커피 등 다양한 메뉴를 갖춘 가게가 들어서자 작은 빵집의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다. 주인아저씨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 무렵 아르바이트 학생도 없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네의 작은 빵집은 만 5년을 채우지 못 한 채 문을 닫고 말았다.

책에서 상상하는 시장(市場)은 합리적이고 이성적 장치이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사람들의 실망과 좌절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드라마 미생의 “회사 밖은 지옥이다”란 비유에 공감한다. 오늘도 많은 자영업자들은 희망과 불안을 함께 안고 가게 문을 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 가게 밖에서 작동하고 있는 시장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이다. 날씨의 변화, 원자재 가격의 변동, 누군가 퍼뜨린 입소문 등 자영업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의해 매일 매일의 수익은 바뀌곤 한다. “정직하게 만들고 성실히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다”란 말은 현실 속 시장에서는 때때로 실현되는 행운일 뿐이다.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날씨, 원자재와 같은 가게 밖의 변수만이 아니다. 2005년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세사업장의 사업주들이 드는 운영상의 어려움은 ① 임차료 및 설비운영비 문제 20.3%, ② 불안정한 대금 회수 20.3%, ③ 원자재 가격 상승 16.4%, ④ 납품 단가 문제 9.4%, ⑤ 인건비 부담 8.6% 순이었다. 즉, 매출 및 원자재와 관련된 변수를 제외할 때 자영업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임차료 등 운영비의 문제다.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인건비 부담은 5위에 그치는 점도 흥미롭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의 작은 빵집은 아르바이트 학생을 줄였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의 대책은 이러한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비껴간다. 임차인의 권리금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은 불충분하다. 임대 기간을 보장하고 부당한 임대료 인상을 제어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지지부진하다. 잘 알다시피 국가 경제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부동산과 금융 소득과 같은 지대(地代)의 추구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추구하는 기풍이 자리 잡고, 그것이 시장과 법의 관점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국가는 기업과 개인이 혁신을 통해 창출하는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 1차적 수단인 임차인의 권익 보호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외면하고 있다. 그로 인해 혁신을 추구하는 자영업자는 곤경에 빠지고 오히려 부동산 지주들의 부(富)가 보호받는다.

정말 정부가 자영업자에게 희망을 주기를 원한다면, 권리금과 임대 기간을 확보하고 임대료의 부당한 인상을 방지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년 연장으로 기업의 부담이 증가한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하자고 주장하는 정부의 과감함과 비교할 때, 부동산 임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소극적 태도를 시장질서의 이름으로 변명하며 대책 마련에 손 놓고 있는 정부의 우유부단함은 국민들을 쉽게 납득시킬 수 없을 듯하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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