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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광주, 씁쓸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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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광주, 씁쓸한 5·18

입력
2015.05.1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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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한

정부 기념식에 5·18 단체들 "불참"

대통령 등 주요인사들도 불참 예정

시민들 "5월 정신 계승에 찬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했다. 광주=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했다. 광주=연합뉴스

“뭐가 무서워서 5월 영령들 앞에서 그 날의 피울음을 달랠 노래 한 곡도 못 부르게 하느냐.”

17일 오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ㆍ18민주광장. 5ㆍ18민주화운동 전야제에 부인과 함께 참석한 김모(57ㆍ자영업)씨는 “5ㆍ18하면 무슨 노래가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대뜸 이 같이 목청을 높였다. 잠시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시민 518명의 오카리나 연주 소리로 울려 퍼지자 노래를 읊조리던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막은 저들의 음험함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고 개탄했다.

5ㆍ18 35주년을 맞는 광주가 서러운 분노에 잠겨 있다. 시민들은 “정부가 5ㆍ18을 여전히 홀대하고 있다”며 침통해 했다. 국가보훈처가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올해 5ㆍ18기념식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齊唱ㆍ참석자 전원이 동시에 노래하는 형식)이 아닌 합창으로 부르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은 탓이었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5ㆍ18민주묘지에서 열린 5ㆍ18추모제에 참석했다가 보훈처가 묘지 곳곳에 내건 ‘5ㆍ18정신으로 갈등과 분열을 넘어 미래로 통일로’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보고 “정작 분열을 조장하는 게 누구냐”며 플래카드를 찢기도 했다.

이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은 또다시 5ㆍ18기념식을 둘로 갈라 놓았다. 유족들과 5ㆍ18관련 단체 등은 18일 오전 5ㆍ18민주묘지에서 열릴 정부 주관의 국가기념식을 거부한 대신 같은 시각 5ㆍ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옛 전남도청 앞에서 진행하는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광주시는 시립합창단의 정부 기념식 출연을 전격 취소했고, 광주시의회 등 지역 정치권도 기념식 보이콧을 선언했다. 올해도 5ㆍ18기념식이 ‘상주(喪主)’도, ‘제주(祭主)’도 없이 ‘손님들’로만 치러지게 된 것이다.

특히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 등 정부 주요 인사들도 상당수 기념식에 불참할 것으로 보여 97년 정부 기념식으로 바뀐 이후 가장 초라한 기념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장현 광주시장과 조영표 광주시의회 의장,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5개 구청장 및 구의회 의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역사성을 계승하고자 하는 광주시민들의 열망에 공감하고 지지를 표한다. 국가보훈처는 5ㆍ18기념식이 반쪽행사가 되지 않도록 이제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족들과 시민들은 보훈처가 5ㆍ18기념곡 지정을 외면하고 제창까지 허용하지 않고 버티는 데는 5ㆍ18을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회사원 진모(47)씨는 “2009년부터 7년째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막은 것은 정부의 5ㆍ18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이는 5월 정신을 기억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인 참여자치21 관계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의 유전자를 지닌 노래”라며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게 아니고 계속 되어진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계속해서 불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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