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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수당 받으려면 금융정보 낱낱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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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수당 받으려면 금융정보 낱낱이 공개?

입력
2018.03.05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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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ㆍ채무ㆍ보험료ㆍ보유주식 등

정보 제공 동의서 의무적으로 내

상위 소득ㆍ자산 10%는 지급 제외

모든 정보 노출에 해킹 위험

세금 등 불이익 우려까지

고소득자 신청 포기 움직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마포구에 사는 A(33)씨는 3세 자녀를 뒀고 두 달 후 둘째 출산을 앞둔 '맞벌이 엄마'다. 동네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A씨와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수입을 합하면 한 달에 700만원 가량. 오는 9월부터 6세 이하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 제도가 시행되지만, A씨 부부는 아동수당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이다.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보유한 아파트(7억원대 초반)와 차량 등을 더하면 상위 10% 소득ㆍ자산 기준에 해당할 수 있어서다. A씨는 "아동수당을 신청하려면 소득ㆍ자산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데 못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대출금에 육아 비용까지 부담하면 남는 게 많지 않아 양가 부모님이 생활비와 대출금 상환액을 일부 보태주기도 했는데 혹시 그런 부분까지 다 드러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동수당이 상위 10%를 제외하는 ‘선별적 복지’로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이 10%를 걸러내기 위해 정부가 부모에게 민감한 자산 정보를 속속들이 요구하도록 법에 명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아동수당 신청을 포기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정부 또한 막대한 행정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처지다.

4일 아동수당법 6조 2항에 따르면 아동수당을 받으려는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수당 수급을 신청할 때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나의 각종 금융정보를 받아보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의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제공에 동의해야 하는 금융 정보는 예금의 평균 잔액과 채무 정보, 민간 보험사에 내는 보험료, 보유 주식 정보 등이다. 복지부는 이 외에 다른 금융정보와 신용정보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대통령령에 담을 계획이다. 이 뿐 아니다. 복지부와 지자체는 신청인 동의 없이도 과세 정보와 부동산 보유 현황, 4대 보험료 납부 실적, 심지어 골프나 콘도 회원권 보유 정보까지 전부 들여다 볼 수 있다. 전산 확인이 어려운 전세계약서와 비상장 주식 보유 내역은 신청인이 직접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발의한 아동수당법 원안에는 소득ㆍ자산 정보를 수집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 6세 이하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주기로 해 고소득자 여과 장치가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여야3당 원내대표가 상위 10%를 제외하기로 합의하면서 고소득자를 거르기 위한 방대한 소득ㆍ자산 정보가 필요하게 됐다.

물론 예금 잔액이나 보험료 정보 등은 국세청이 원하면 직ㆍ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이긴 하다. 그러나 한 가구의 자산 정보가 총 망라돼 특정 기관(사회보장정보원)의 손에 들어가 수시로(소득은 월 1회ㆍ자산은 연 1, 2회) 자동 업데이트까지 되는 것은 월 10만원의 대가치고 너무 크다는 볼 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사회보장정보원을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만 받으면 언제든 이런 종합 정보를 들여다 볼 수 있고 해킹 위험에도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고소득 전문직 맞벌이 가구나 일부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아예 신청을 포기하겠다는 움직임이 벌써 나온다. 외벌이인 성형외과 개원의 B(42)씨는 둘째가 세 살이어서 아동수당 신청 대상이지만 자산 정보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왠지 찜찜하다”며 일찌감치 신청 계획을 접었다. “월 10만원을 받겠다고 정보를 제공했다가 나도 몰랐던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는 등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0세, 4세 두 자녀를 둔 C(45)씨도 “부부의 소득과 자산 정보를 고스란히 정부에 넘겨주는 것은 너무 위험스럽다”며 아동수당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부 또한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다. 10%를 걸러내기 위한 행정비용이 최소 500억원, 많게는 1,000억원 가량 될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제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달랑 10%를 제외하는 선별적 복지를 택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합리한 문제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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