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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 업적, 포기해야 생긴다

입력
2016.10.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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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과 한반도 주변 4강 정상의 유사점이 하나 있다. 2012년과 2013년 임기를 시작해 출발선이 비슷하다. 새로운 틀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던 연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3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은 2월, 시진핑 중국 주석은 3월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조금 앞선 2012년 5월이고,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부친 사망 시점부터 치면 2011년 12월로 이른 편이다. 처음 기대와 달리 이들은 현안마다 대립하며 미일과 중, 한미일과 북중러, 한미일과 북 등의 구도로 동북아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물론 핵 실험만 3차례 한 김정은 정권이 큰 변수였다.

4년이 흘러 등장한 새 변수가 인물의 교체다. 가장 먼저 오바마가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면, 박 대통령이 다음 차례다. 나머지 4인은 차기 한미 정상과 임기가 겹칠 만큼 아직은 여유가 있다. 임기 10년인 시진핑은 권력을 키우는 중이고, 6년을 보장받은 아베는 9년 임기에 도전한다.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푸틴은 재집권에 성공하면 임기가 12년으로 는다. 김 위원장은 임기가 없다.

내려와야 하는 정상들로선 ‘레거시’를, 정책의 연속성을 따져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재임까지 한 오바마는 첫 흑인 대통령인 점 말고도, 후임자에게 남겨줄 유산이 넉넉하다. 외교만 해도 이란 핵, 쿠바 단교 문제를 해결했고, 부상하는 중국을 요량껏 관리해냈다. 상대적으로 박 대통령의 레거시는 ‘이거다’ 싶은 걸 찾기가 쉽지 않다. 아직 임기가 5분의 1 이상 남아 있으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박근혜 정부가 해낸 10가지 업적을 정해 지난 추석 때 홍보했다. ‘사회 적폐 해소와 기초연금, 공공개혁, 노동개혁, 자유학기제, 위안부 협상, 사드 배치 결정, 북한인권법, 통진당 해산, 동남권 신공항’이 그것인데, 선뜻 공감하기가 어렵다. 되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떨어지고 있고, 위안부 협상은 재협상 여론이 더 많다. 지진 사태로 다시 등장한 국민안전 문제, 반복되는 법조계 비리 등은 두고두고 점수를 까먹을 것이다.

이런 집권 성적 장부를 한번에 ‘플러스’로 만들 레거시 후보에 대북정책이 있다. 관리들이 전하는 말로는, 북핵 사태로 인한 위기감 때문이겠지만 대북 문제가 다른 정책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런 탓에 김정은 정권을 무너지기 전까지 밀어붙여 무릎 꿇리겠다는 압박 은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의 우발상황에 대한 대비를 강조하며, 급변 사태와 체제 붕괴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지금의 대북정책은 미완의 유산일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는 11월 초 판가름 날 미국의 새 정권과 정책을 조율하는 데 내년 상반기를 보낼 것이다. 조율 과정에서 미국의 파워는 노무현 정부마저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합한 데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북핵 위협을 가끔 과장하고 북한 붕괴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터무니 없는 논리로만 치부할 수 없다.

내부적으로도 이미 판이 선 차기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 대북정책은 바뀔 게 분명하다. 수정의 명분은 지난 5년의 압박이 핵 실험만 3차례 가져왔다는 아픈 비판일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정권의 역 교체를 막아야 하나, 정치 상황은 정책의 연속성을 지켜내기에 유리하지 않아 보인다. 갈등을 이용해 국민 누구도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는 정권을 내주기 전의 진보 정권 때와 닮아 있다. 보수 세력은 분열돼 레시피 없는 정치, 자기 파괴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시간에 쫓겨 조급할 수밖에 없는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오히려 유산 만들기의 포기일 수 있다. 나쁜 정권은 레거시가 없는 데 있지 않고 무능에 있다.

이태규 정치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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