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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19세기 역사도, 서사적인 재미 가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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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19세기 역사도, 서사적인 재미 가득해요”

입력
2018.03.29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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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을 판다ㆍ고양이로 묘사 등

서브컬처 결합 시사만화로 인기

10년 전 디씨인사이드서 그리다

출판사 제안에 단행본 내며 시작

안희정 꽃미남 묘사 ‘안빠’說에

“그래도 만화는 공정하게 그려”

27일 경기 고양시 삼송동 집 겸 작업실에서 만난 굽시니스트. '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통해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했다.
27일 경기 고양시 삼송동 집 겸 작업실에서 만난 굽시니스트. '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통해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했다.

“아이고 제가 영광입니다.” “제가 뭐 그럴 정도는 되나요.” “출ㆍ퇴근 없이 자유롭게 빈둥빈둥 댄다는 게 참 좋은 일이지요.” “제가 안되면 뭐, 아내가 어떻게 하겠지요.”

진짜 굽신굽신했다. “원래 그러냐”니까 “진짜 원래 그래왔다” 한다. 말투는 느릿하고, 화법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식인데, 거기다 문어체를 쓴다. 답변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굳이 꼽으라면 ‘설렁설렁 대충대충’이다. 서브컬처(비주류 하위문화)를 결합한 독특한 시사만화로 수많은 숭배자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굽본좌’다.

27일 경기 고양시 삼송동 집 겸 작업실에서 만난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본명 김선웅ㆍ37) 손엔 ‘본격 한중일 세계사’(위즈덤하우스) 1권 ‘서세동점의 시작’이 들려 있었다. 지난해 시작한 웹툰 연재를 묶어냈다. 오랫동안 열망해왔던 교양 역사만화 작업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은근히 에두르는 충청도 화법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중 한 컷. 면직물 전쟁이 산업혁명을 촉발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중 한 컷. 면직물 전쟁이 산업혁명을 촉발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정부가 바뀌었다. 시사만화가는 소재고갈에 시달릴 것 같다. 그래서 교양 역사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게을러서 그리 됐다.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2008년)에서 태평양 전쟁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제대로 그려보고 싶다고 혼잣말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 성사됐다.”

-태평양전쟁인데 19세기까지면 너무 거슬러 간다.

“중국과 일본이 왜 그런가 살피다 보니 그리 됐다. 2권은 태평천국, 3권은 일본과 흑선 순으로 나갈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너무 일을 크게 만든 것 같다. 다 그릴 때까지 출판사가 받아줄지 모르겠다(출판사의 기대작 중 하나다).”

-주간지 시사만화에 웹툰까지, 일정이 빡빡하겠다.

“화요일 밤까지 웹툰 마감하고, 또 목요일까진 주간지 마감을 한다. 주간지 마감하면 다음주 웹툰 준비를 한다. 웹툰은 60컷 작업이라 미리 준비해야 해낼 수 있다. 두 개인데도 허덕댄다. 밤낮없이 작업하다 보니 가끔 자다 일어났을 때 어두우면 새벽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된다.”

-왜 굽신대는가.

“10여년 전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서 활동할 때 그냥 정한 거다. 그 때 무슨 ‘이즘,’ 무슨 ‘이스트’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쾌벼니스트’ 같은 것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굽시니스트라 했는데, 지금은 좀 후회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그럴 듯한 걸로 할 걸.”

-역사만화가를 꿈꾼 계기는.

“꿈꾼 건 아니었다. 디씨인사이드에 재미삼아 만화 그리다 출판사 제안으로 책을 낸 게 2차 세계대전 얘기였다. 제안을 받고는 ‘참 별 일이 다 있구나’ 싶었고, 계약금 받고는 ‘이게 돈이 되는구나’ 놀랐다.”

-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했던데 역사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아니었나..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을 책으로 냈지만 작가가 되리라 생각 안 했다. 선생님이 되려고 대학원엘 갔는데 임용고시가 너무 까다롭고 경쟁이 치열해서 관뒀다. 제가 노력파가 아니다.”

굽시니스트 '본격 한중일 세계사'의 한 컷. 아편전쟁을 설명하고 있다. 위즈덤 하우스 제공
굽시니스트 '본격 한중일 세계사'의 한 컷. 아편전쟁을 설명하고 있다. 위즈덤 하우스 제공

-독자들은 창작자의 고통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고통스러워하고 그런 것 말이다.

“만화가라는 직업이 어느 정도 안정적 궤도 오르면 출퇴근 하는 사람에 비해 힘들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렇게 빈둥빈둥 출퇴근 안하고 일하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너무 편하게 살아서 죄 받을 거 같다. 좋게 좋게 생각해야 한다. 딱 하나 힘든 건 마감이 두 번이니 움직이지 못한다. 여행 좋아하는 아내가 불만스러워한다.”

-그건 아내의 고통이지 않나.

“하기야 난 집 뒤편 대형 쇼핑몰로 여행간다. 마트, 피자, 전자상가 다 좋다. 지난해 자전거도 타고 다녔다. 요즘은 고맙게도 미세먼지 덕분에 안 탄다.”

-이건 오랜 팬의 질문이다. 일본 캐릭터가 원숭이에서 고양이로 바뀌었는데 이유가 있나.

“온천하는 원숭이를 떠올려서 그런 건데 비하하는 걸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서 고양이로 바꿨다. 일본 만화가 중에도 일본인을 원숭이로 그리는 사람이 있긴 한데, 니거(Nigger) 농담은 흑인들만 쓸 수 있듯, 나까지 그렇게 하긴 좀 그렇다 생각했다.”

-또 다른 질문이다. 안희정을 꽃미남으로 묘사해 ‘안빠’라는 설이 돌았다.

“만화 캐릭터란 언제나 ‘데포르메’로 그려지는 것이기에, 외모를 내세우는 캐릭터는 그 외모라는 부분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법이다. 때문에 박근혜도 미소녀로 그려진 적이 있다. 마음에 드는 쪽은 예쁘게, 마음에 안 드는 쪽은 추하게 그리는 평면적 표현보다는 좀 더 입체적으로 만화를 그리고 싶다. 안희정의 사례에서도 보듯 악마는 언제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반대로 일찌감치 안희정의 왕자병을 꿰뚫어 봤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에야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가.

“우리로 치자면 19세기 역사는 나라가 망한 역사다. 그래서 지나치게 묵직하다. 그보다는 역사만이 지닌 서사적인 재미를 보여주고 싶다. 거대한 질문과 대답보다 작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기발한 표현을 잘 하는 비결이나 방법은 뭔가.

“작업실에 앉아 끄적이는 걸 좋게 봐주시니 다행이다. 사실 내가 빵빵 터지는 개그를 넣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판다(중국)와 고양이(일본) 캐릭터는 귀여우니까 그걸 장점으로 봐달라.”

고양=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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