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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나만의, 올해의 책

입력
2014.12.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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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면 일간지 북섹션마다 으레 ‘올해의 책’ 목록이 실린다. 문학 출판 담당 기자들이 뽑았거나 일부의 출판 관계자들을 선자로 참여시킨 리스트다. 인문사회, 문학, 과학, 아동 등 각 분야를 나누어 한 두 권씩의 책을 고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전 분야를 망라하여 가장 많은 표를 얻은 1위부터 차례로 등수를 매긴 경우도 보았다. 독자의 눈을 잡아끌고 화제를 모아야겠다는 욕망이 그런 편집을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화제를 모았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목록의 상위에 랭크된) 몇몇 책의 관계자들은 기뻐하거나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고 (목록의 하위에 랭크된 책의 관계자들을 비롯해) 다수의 출판인들은 지면 한 귀퉁이에 나열된 선자의 면면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훑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데 지나치게 객관적인 척 한다는 것이 이런 목록들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일 년 전 이맘 때 쯤 선정되었던 신문사별 ‘2013년 올해의 책’ 목록을 다시 찾아보았다. 누구나 이름을 들어보았을 만한 책들이 뜬다. 신문사마다 내용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여러 책들이 겹친다. 과문한 탓에 다른 분야에 대해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문학 분야에 한정해 말하자면 선택 기준들 중 한 가지는 감이 잡힐 것도 같다. 판매량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를 배제한 곳이 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흥미로운 기획도 보인다. 출판팀 기자들이 ‘아뿔싸 올해 이 책들을 놓쳤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좋은 책인지 미처 몰라보고 지면에서 다루지 않았던 책들을 소개한 것이다. 연말 특집기사의 천편일률적인 패턴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는 노력의 산물일 터다.

작년 말 내가 다른 신문사에게서 청탁받은 원고도 그런 맥락의 기획이었다. 한해 동안 나를 매혹시킨 책을 한 권만 정하라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비교적 긴 분량으로 쓰라 했다. 딱 한 권만이라니. 남의 선택을 기웃거리며 넘겨다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오직 나의 책들에만 집중했다. 한해 동안 내가 읽은 책들을 찬찬히 회고해나가자니 그 한 해의 시간들이, 삶들이 함께 떠올라 흘러갔다. 열 권이면 얼마나 좋을까. 다섯 권, 아니 세권 만 고르래도 좋을 텐데. 오래 망설인 이유는 아쉬워서였다. 결국 나는 읽는 동안 가장 많이 울었던 책을 골랐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적 없는 책이고, 어떤 신문에서도 올해의 책 10권에 포함시키지 않은 책이다. 글이 실리고 나서 그 책 또또의 작가 조은 시인으로부터 정성 어린 편지를 받았다. 나는 이런 답장을 보냈다. “제가 또또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닐 수밖에 없는 건 그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예요.”

2014년 올해 출간된 책들 중에 진심으로 좋아하는 책,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책도 여러 권이다. 읽으며 가장 많은 줄을 쳤던 책은 ‘작가란 무엇인가’(다른ㆍ권승혁 김진아 옮김)이다. 뉴욕의 문학잡지 파리리뷰의 소설가 인터뷰를 편집해 출간한 책이다. 레이먼트 카버가 술을 언제 끊었는지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가 쓰기를 열렬히 바랐지만 결국 못쓴 소설에 대해 들려준다. 내년 2권과 3권이 출간 대기중이라는 소식이 나를 한없이 들뜨게 만든다.

책 좀 추천해 달라는 이들에게 소개하고 나서 가장 많은 감사 인사를 받았던 책은 ‘모멸감’(문학과지성사ㆍ김찬호 지음)이다. 누군가 악의 없이 던진 말에 괜히 혼자 발끈하고 그 감정의 정체를 몰라 당혹스러웠던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이었나 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모멸감의 본질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 때문에 모욕을 주고받는지 또 어떤 사람이 왜 모멸감을 더 예민하게 느끼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회를 ‘감정’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성찰하는 시각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도 배웠다.

지극히 주관적인, 나만의 리스트는 이렇게 천천히 채워져 가고 있다. 2014년 올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고른 바로 그 책은 무엇인가?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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