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살아 있어 고마울 뿐" 금강산이 울었다
알림

"살아 있어 고마울 뿐" 금강산이 울었다

입력
2015.10.20 18:10
0 0

"언제 오나" 출입구만 응시하고

아들의 큰절에 눈물 또 눈물만

"오빠, 오빠" 달려나간 여동생

"이제 소원 풀어" 되뇌인 아버지

부둥켜안은 남북 '감격 재회'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인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진행된 첫 번째 단체상봉에서 남측 이순규(85) 할머니가 60여년 만에 북측 남편 오인세(83)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 수줍게 웃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인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진행된 첫 번째 단체상봉에서 남측 이순규(85) 할머니가 60여년 만에 북측 남편 오인세(83)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 수줍게 웃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전쟁 때문에 그래. 할매, 나는 말이야 정말 고생도 하고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야. 하늘이 낳은 우리 당이…전쟁으로 인해서 우리가…우리나라 정책이 말이야.”

65년 만에 다시 만난 남녘 새색시는 백발의 팔순 할머니가 돼 있었다. 그런 아내에게 미안한 듯, 이빨이 다 빠진 북녘의 남편 오인세(83)씨는 아내 이순규(85)씨의 손을 잡았다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며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아내의 의자를 당기며 “가까이 다가 앉으라”고 했지만 아내는 쑥스러운 듯 답이 없었다.

이산가족 상봉 시작 전 고동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남편이 오는지 보려고 상봉장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만 쳐다보던 아내였다. 남편 줄 결혼선물로 시계도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남편을 만나자 어색해졌다. 남편은 1950년 6ㆍ25 전쟁 직후 훈련 받으러 나간다며 충남 예산 집을 떠났다 그 길로 행방불명 됐다. 그가 죽은 줄 알고 남쪽 가족들은 78년부터 제사도 지내왔다. “65년 만에 만났는데 그냥 그래요. 보고 싶었던 것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 (이렇게) 눈물도 안 나오잖아요. 평생을 (떨어져) 살았으니까 할 얘기는 많지만 어떻게 다 얘기를 해. 나는 결혼하고 1년도 못 살고 헤어졌으니까.”

하지만 어머니 태중에서 아버지와 헤어졌던 남쪽 아들 장균(65)씨는 “아버님 있는 자식으로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저랑 똑같이 닮으셨습니다.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큰 절을 올렸다. 아내도 시간이 흐르자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마워. 65년 동안 (내가) 아들 키우고 했으니 (남편이) 벌금 내야지”라는 농담도 건네며 얼굴이 환해졌다. 이들을 지켜보던 다른 가족들은 반가움과 서러움이 뒤섞인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지난해 2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성사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일 북한 금강산에서 시작됐다. 북측 상봉 신청자 96가족 114명과 남측 가족 389명은 이날 오후 3시 30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상봉장에서 2박 3일 상봉행사의 첫 만남을 가졌다. 60여년 만에 다시 만난 남북의 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면회소 상봉장에 먼저 들어와 기다리던 남측 상봉단은 기대와 긴장에 찬 표정으로 북측 가족들이 들어올 입구를 쳐다봤다. 오후 3시 반 상봉장 문으로 북측 가족들이 하나 둘 들어서자 상봉장 테이블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지팡이를 들고 휠체어에 탄 채 상봉장에 나타난 북측 상봉단 리흥종(88)씨를 먼저 알아본 남측의 여동생 이흥옥(80)씨는 울음을 터뜨리며 “오빠” 하고 달려갔다. 리씨도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리씨는 헤어질 때 두 살이었던 딸 이정숙(68)씨를 바라보며 입까지 바르르 떨었다. 리씨의 휠체어를 끌고 와 의자에 앉히면서도 가족들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리씨는 동생과 남쪽 가족들 안부를 물으며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딸을 잘 알아보지 못하던 아버지도 차츰 말문이 열렸다. “아버지, 나 딸 정숙이.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딸 정숙이 어떻게 생겼어요?”라고 딸이 묻자 아버지는 “소원을 풀었어”라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김남규 오빠가 옳은가(맞나)?” 남측 상봉단 중 최고령인 김남규(96)옹은 북측 여동생 남동(83)씨와 두 손을 꼭 잡고 앉았지만 동생의 말은 잘 알아 듣지 못했다. 고령에 수년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이었다. 동생이 “(강원 강릉시) 사천 초가집에 아직 사나”라고 묻자 조카인 경숙(63)씨가 “사천에 새로 집을 지어 이사했다”라고 대신 답했다. 경숙씨는 “할머니는 곧 고모가 오겠지 하면서 고모 시집 보낼 때 쓰려고 도포(삼베로 만든 옷)와 이불 천 같은 걸 오랫동안 간직하고 계셨다”고 설명했다. 6ㆍ25 이전 면사무소 직원이었던 남동씨가 북으로 넘어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활동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흑백 가족사진을 내놓자 남측 가족들의 분위기도 밝아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만날 아버지를 위해 경북 문경에서 자신이 농사지은 햅쌀을 선물로 가져온 남쪽 아들 채희양(65)씨는 북쪽 아버지 채훈식(88)씨와 만나자마자 5분 넘게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버지 채씨는 “너희 어머니가 나 없이 혼자서 가정을 책임졌다. 나를 위해서 (너희 어머니는) 일생을 다 바쳤다”라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이번 상봉에서는 북한 최고 수학자로 평가 받다 2002년 사망한 조주경씨의 아내 림리규(85)씨가 남측 동생 한규(80)씨, 조카 현근(77)씨, 시동생 조주찬(83)씨를 만나 눈길을 끌었다. 조주경씨와 동생 주찬씨는 2000년 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나 화제가 된 바 있다.

남북 가족들은 두 시간여의 단체상봉 후 저녁 7시30분부터 다시 만나 환영만찬을 함께 했다. 이들은 22일까지 개별상봉, 식사 등 총 12시간의 상봉 행사를 갖는다. 남쪽 90 가족이 북측 상봉단 188명을 만나는 2차 상봉은 24~26일 같은 곳에서 열린다. 이번 상봉행사는 8ㆍ25 남북 고위당국자 합의에 따라 열린 것으로, 박근혜정부 들어 성사된 두 번째 이산가족 상봉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정상원기자 ornot@hankookilbo.com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