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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축제로 권력을 조롱한 유쾌한 투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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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축제로 권력을 조롱한 유쾌한 투쟁들

입력
2015.05.2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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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후 17가지 문화운동 소개

네그리튀드·펑크·치카노 등

소수자 목소리와 시대상 담아내

강고한 사회와 지속적 싸움 강조

멕시코계 미국인을 일컫는 '치카노(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벽화 운동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 '우리는 소수자가 아니다(We are not a minority)'는 문구와 함께 체 게바라의 커다란 손가락이 행인을 지목하는 모습이다. 시대의 창 제공
멕시코계 미국인을 일컫는 '치카노(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벽화 운동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 '우리는 소수자가 아니다(We are not a minority)'는 문구와 함께 체 게바라의 커다란 손가락이 행인을 지목하는 모습이다. 시대의 창 제공

혁명의 풍경은 엄중하다. 끓어오르는 분노, 처절한 절규, 목숨을 건 투쟁 등 혁명의 원료들이 본래 가벼울 수 없는데다, 공고한 권력과 관습을 무너뜨리는 일이 대체로 사활을 요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투쟁의 장면에 형형색색 유머의 옷을 입히고, 상상력의 고깔을 씌운 이들이 등장했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방식으로.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의 연대기’는 20세기 이후 세계 곳곳에 불쑥 출현해 유쾌한 도발을 시도해 온 17가지 문화운동을 소개하는 책이다. 미학 박사인 저자는 결핍 부재 침묵 속에 살던 네그리튀드, 히피, 펑크, 레게, 치카노 등의 집단이 ‘우리는 존재한다’ 고 목소리를 낼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역사, 정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생하게 담아냈다.

정권 전복에는 실패했으나 문화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는 대표적 문화운동은 프랑스의 68혁명이다. 저자는 미국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연구를 토대로 68혁명을 이끈 신좌파가 이전 세대와 달리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혁명 이론에서 벗어나, 서구사회의 모든 권위, 가령 정부, 대학 행정, 가족, 성적 억압, 부르주아적 가치를 공격”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들은 밖에서, 거리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것은 공적인 곳으로의 사적인 것의 누수였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밀실의 욕망을 가시화하는 실천이었다. 어른들에게는 외설스러운 것이었고, 젊은이들에게는 경계를 허무는 위반의 행동이었다.”

이런 정서는 길거리에 뿌려진 유인물과 벽에 쓰인 그래피티 문구에도 묻어났는데 “상상력에 권력을” “일상을 거론하지 않은 채 혁명과 계급 갈등을 이야기하는 이는 입에 시체를 물고 있는 것이다” 등의 구호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68혁명 정신을 대변했다.

네그리튀드는 1930년 프랑스어권 흑인 지식인이 전개한 문학적 운동이다. 흑인을 뜻할 뿐 아니라 ‘더러운, 역겨운’등의 함의로 소비되던 ‘네그르(negre)’와 태도를 뜻하는 ‘튀드(tude)’의 합성어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비참하고 궁핍한 흑인의 현실을 떠안음과 동시에 자긍심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역설적”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들은 “타자를 수단화하고 파괴하는 유럽인과 달리 흑인은 대상과 대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흑백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으나 저자는 “모든 소수자 운동이 이런 과도기를 겪는다”고 분석한다.

이런 다원주의적 저항은 생활양식, 문학, 음악, 미술 속에서 다양한 변주로 출현한다. 히피들은 노동 대신 게으름과 놀이를, 건강 대신 노숙을, 미래 대신 쾌락을 추구하고,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는 품위 없는 무대매너와 냉소적 음악으로, 밥 말리는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드레드록 스타일을 고집하며 세계의 이물질, 불량배, 돌연변이를 자처한다.

저자는 이들 문화운동을 관통하는 정신이 놀이와 축제와 삶을 통해 자신들을 정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회 현실을 가시화하고 지속돼야 할 싸움의 집요함과 현실의 잔인함을 명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자기혐오에서 벗어난 집단적 연대가 전제됐기 때문에 이들의 싸움이 유쾌할 수 있다고 본다.

젊거나 작거나 낯설거나 검은 존재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의 서문은 이들이 희망하는 연대는 안쓰러운 시선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명료하게 말한다.

“어둔 곳, 말 없는 곳, 얼굴이 보이지 않던 곳에 있던 이들이 밝은 곳으로 우르르 떼를 지어 나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때, 나의 자비와 이해를 바라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드러낼 때, 바로 그때 나와 너의 관계는 일방향이길 멈추고 쌍방향의 교섭, 협상, 나아가 사랑의 맥락에 들어서게 된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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