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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대는 뉴런 다발은 어떻게 사랑을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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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대는 뉴런 다발은 어떻게 사랑을 만드는가

입력
2014.09.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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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코흐 지음ㆍ이정진 옮김

알마 발행ㆍ352쪽ㆍ1만9,500원

美 신경생물학자인 저자가

뇌-의식 상관관계를 찾기 위해 20년간 탐구한 지적 여정

의식과학의 최전선 엿볼 수 있어

크리스토프 코흐
크리스토프 코흐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얼마 전 안면실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안면실인증은 얼굴을 더디 익히는 수준을 넘어, 가족이나 유명인사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다. 일명 ‘얼굴맹’으로 불리는 이들에게는 얼굴을 구별하는 일이 강바닥에 있는 수많은 자갈의 차이점을 일별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안면실인증과 반대되는 증상으로 카프그라 증후군이 있다. 저마다 다른 형상을 비슷한 형상으로 보는 얼굴맹과 달리 이 증상을 가진 이들은 하나의 형상, 가령 아내의 얼굴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얼굴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증상이 발발하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학계에서는 뇌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뇌피질 속 얼굴 인식을 관장하는 뉴런이 파괴됐거나, 반대로 얼굴 인식은 손상되지 않았지만 친근함에 대한 자동적인 반응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고통과 기쁨, 기질과 성격, 취향과 재능을 논하는 장에서 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다지 환영 받을 일이 못 된다. 한낱 회백색 세포 덩어리에 불과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면 지상계에 속해 있는 것이 천상계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영역인 영혼에 관여한다는 주장은 인간 스스로를 누추하게 만드는 말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벅찬 사랑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호르몬의 이름을 나열하고, 남성이 여성의 곡선에 매혹되는 이유를 유인원의 생존 투쟁으로 해석하는 건 확실히 ‘깨는’ 일이기는 하다. 과학과 영혼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또는 만나서는 안 될 두 줄의 평행선이 아닐까.

크리스토프 코흐가 쓴 ‘의식’은 위의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미국 시애틀 앨런뇌과학연구소의 최고과학책임자를 맡고 있는 코흐는 지난 20년 간 의식에 대해 과학적 해석을 시도해온 선구적 신경생물학자다. 지난 세기 역사상 가장 큰 권위를 누렸던 과학이 마지막까지 정복하지 못한 난제인 의식에 대해 저자는 조심스레, 그러나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접근한다. 그 믿음은 영혼이 뇌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불명의 무엇’이 아닐 거라는, 둘 사이의 접점이 대뇌피질 한 구석이든 우주의 끝이든 어딘가에는 존재하리라는 믿음이다.

“나는 뇌의 실제 연결 구조도를 살펴보고 뇌가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을 그 회로도로부터 추론하여, 물리적 원리를 바탕으로 그런 질문에 대답할 방법을 찾는다…어쩌면 이러한 작업이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지 말라. 시인, 작곡가, 보안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음을 한탄한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내가 모든 요소와 함께 한 사람의 뇌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면 더는 사실이 아니다.”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와 수만 개의 시냅스 속에서 의식을 생성하고 촉발하는 것들을 규명해내려는 코흐의 시도는 아직은 매우 생소한 풍경이다. 사랑을 느낄 때마다 꿈틀대는 뉴런다발을 발견한다 해도 그것이 왜 꿈틀거리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조용히 저자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가 과학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철학과 영혼과 정신을 폄하하는 실례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뇌와 의식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려는 저자의 모험은 존재의 의미를 깨치려는 구도자의 여정과도 닮아 있다. 과학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내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을 지켜보고,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의식과학의 최전선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책은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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