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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폴 포트 합친 것 같은 '21세기 칼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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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폴 포트 합친 것 같은 '21세기 칼리프'

입력
2015.06.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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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지도자 '칼리프 이브라힘' 등극… 아랍 혼란 속 '이슬람 국가' 선포

IS는 미국이 만들었다?… 원리주의만이 美 패권주의에 대항

<편집자주> 매주 월요일 ‘평전, 사람으로 세상읽기’를 새로 연재합니다. 작고했거나 동시대를 살거나 가리지 않고 현대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인물을 조명하는 글입니다. 집필은 문화평론가 이재현씨,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번갈아 맡습니다.

급진 수니파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AP=연합뉴스
급진 수니파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AP=연합뉴스

이라크와 시리아의 테러 군사조직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1971년 이라크의 사마라에서 태어났다. 2011년 미국 국무부에 의해 1,000만 달러 현상금이 걸린 테러리스트로 고지될 때의 이름은 ‘아부 두아’였다.

아랍 남성의 이름에서 ‘아부’는 다음에 나오는 인명 ‘~의 아버지’이고, ‘이븐’ 혹은 ‘빈’은 ‘~의 아들’이란 뜻이다. 아랍어 정관사 ‘알-’ 뒤에는 출신지, 연고지, 부족명 등이 오는데, 이 둘이 합쳐져서 패밀리 네임을 대신한다. 한편 무슬림 전사들은 아이가 없더라도 존칭의 취지에서 ‘아부’란 닉네임을 쓴다. 오사마 빈 라덴은 고조 할아버지의 이름이 ‘라딘 알리 알-까흐따니’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먼 조상의 개인 이름을 오늘날 가문 이름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브라힘은 당초 슈라의 율법 책임자

알-바그다디를 칼리프로 내세운 IS의 영어 홍보물에는, 그의 공식 이름의 앞부분이 ‘이브라힘 이븐 아와드 이븐 이브라힘 이븐 알리 이븐 무하마드’였고 바로 이어서 ‘혈통에 의해서 알-바드리 알-하쉬미 알-후세이니 알-꾸라이쉬, 탄생과 성장에 의해서 알-사무라이, 거주와 학업에 의해서 알-바그다디’라고 공표되었다. 그러니까, 그의 개인 이름은 이브라힘이고, 먼 조상은 꾸라이쉬 부족 출신이며 그는 사마라에서 태어나서 바그다드에서 공부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꾸라이쉬 부족은 예언자 무하마드와 그 후계자인 칼리프 아부 바크르가 속해 있던 부족이다.

이브라힘은 바그다드에 있는 ‘이슬람 대학’(1989년 개교)에서 이슬람학 전공으로 학사에서 박사까지를 마쳤다. 지역 모스크 등에서 종교 업무에 종사하고 있던 걸로 알려진 이브라힘은, 미국 공식 기록에 의하면, 2004년 2월부터 12월까지 이라크 남부의 부카 수용소에 수감된다. 아마도 그는 여기서 원리주의적이고 종파주의적인 글로벌 테러리스트들 및 수니파 바트당 출신의 전직 이라크군 장교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용소에서 나온 이브라힘은 ‘무자헤딘 슈라 평의회(MSC)’에 들어갔다고 한다. 무자헤딘은 전사란 뜻이고, ‘자문’이란 뜻의 슈라는 꾸란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전통적인 협의체인데, 상당수의 보수주의적 원리주의자들은 슈라야말로 서구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형태라고 주장해 왔다.

MSC는 알-카에다 이라크 조직이 다른 조직들과 합쳐서 2006년 초에 결성한 것인데, 알-카에다 이라크 조직의 악명 높은 지도자 알-자르카위가 그 해 6월 미군에게 살해된 후에는 알-마스리와 아부 우마르 알-바그다디라는 두 명의 지도자 아래 움직여 왔다. 이브라힘은 직접 전투에 종사하지 않고 MSC 안에서 샤리아(이슬람 법)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책임자로 있었다. IS가 나중에 공개한 이브라힘의 공적에 의하면 그는 아부 우마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사마라와 디얄라 지역에 살던 자기의 부족에게도 충성 맹세를 권유했다는 것이다. MSC는 2006년 ‘이라크이슬람국가(ISI)’를 선포한다.

이라크ㆍ시리아 참상이 IS의 토양

2010년 알-마스리와 아부 우마르 알-바그다디가 미군에 살해된 직후인 5월에 이브라힘은 아부 우마르 알-바그다디의 후계자로 발표된다. IS의 이브라힘 공식 전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이는 전적으로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친척들의 종교 관련 직업 내력과 그 자신의 학력 및 경력 덕분이었던 듯하다. 오사마 빈 라덴은 직업이 건설업자였고, 그의 후계자인 알-자와히리는 의사였다. 이브라힘의 후계자 추대는 MSC 슈라에서 다수가 결정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즈음부터 아랍 정세는 급변하는데, 2010년 겨울과 2011년 봄에는 소위 아랍의 봄이 중동 지역을 휩쓸었고, 2011년 전반에는 시리아 내전이 일어남과 동시에 빈 라덴이 사살되고, 그 해 12월에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ISI는 급작스럽게 성장해서 2013년 3월에 시리아 도시 라까를 함락시키고 4월에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 또는 ISIS)’를 선포한다. 2014년 6월에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함락시키고 나서 7월에 칼리프 국가로서 ‘이슬람 국가’의 성립을 선언하고 ‘칼리프 이브라힘’을 추대했다.

IS는 야만적이고 잔혹한 대량 학살 및 처형, 보수적이고 엄격한 이슬람 법 집행, 그리고 극악스러울 정도로 선정적이며 패륜적인 홍보 동영상 등으로 악명 높다. 그런데 IS는 점령 지역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것일까. 군사적으로, 이라크에서는 정부군의 부패 및 무능 덕분이며, 시리아에서는 알-아사드 정권이 반군을 견제하기 위해서 IS를 상대적으로 방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더 근원적으로는 이라크 전쟁 및 시리아 내전 자체의 참상과 곤경 때문이다. 2003년 이후 이라크전쟁 때문에 사망한 민간인 숫자는 적게는 십수만에서 많게는 백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IS는 수니파 전직 군인들을 끌어들이고 각 지역의 부족들과 타협해가면서 효율적인 군사-행정적 통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IS가 점령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은 전투 상황보다는 IS 치하를 선호하고 있다는 게 주요 외신에 의해 보도되었다. 점령 지역에서 IS는 주민에게 전기와 물을 공급하면서 세금을 걷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패륜적이고 잔혹한 홍보 동영상이 큰 역할을 했다. 자살폭탄 테러로 죽어가는 신참 테러리스트의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동영상을 보고서 전세계에서 몰려든다. 게다가 홍보 동영상의 잔혹함은 부패하고 무능한 이라크 정부군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美, 이슬람 개혁 기반 말살도 한몫

칼리프 국가의 수립이라는 이념은 전혀 엉뚱하거나 복고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근현대 이슬람 정치사상은 크게 세속주의, 개혁주의, 원리주의로 나뉜다. 정교 분리의 세속주의 정권이 있던 이란에서 쿠데타를 획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호메이니 신정 통치 체제를 성립시켜 준 바 있던 미국은 지난 번 아랍의 봄 때에도 다수의 세속주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때 미국, 특히 CIA가 행한 역할은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 결코 아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을 포함한 서구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및 중동의 여러 국가들을 침략, 수탈, 억압해왔고, 미국은 사우디 등 보수적 친미 독재 왕조 정권을 지속적으로 비호해 왔다. 개혁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원천적으로 없앴던 것이다.

원리주의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이고 종파주의적이면서도 글로벌 테러리즘을 지향하는 분파만이 살아남아서 미국의 패권주의와 겨루게 된 것이다. 칼리프 국가를 수립해서 서구의 제국주의 침탈에 대응하자는 생각은 이미 20세기 전반부터 하싼 알-바나 및 라쉬드 리다 등과 같은 보수적 원리주의 수니파 사상가들의 저서에 나와 있다. 현대적 칼리프 국가란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의한 제국주의 중동 분할과 그 이후의 역사를 지정학적으로 정면에서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당연히 무슬림 전체의 화해와 유대를 주창하고 있었다.

시아파가 다수였던 이라크에서는 오스만 터키 제국의 유습에 힘입어 소수인 수니파 후세인 정권이 집권해 있었다. 소련에 대항하던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키워주었듯이, 이란-이라크 전쟁 때 미국은 후세인 정권을 엄청나게 지원했다. 그런 미국은 테러가 거의 없었던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후세인의 세속주의 정권을 넘어뜨렸다. 수니파 종파주의 테러 집단인 IS는 지금 시아파를 학살할 뿐만 아니라 IS에 대항하는 수니파도 학살한다. 알-카에다가 IS와 작별을 고하게 된 것도 이렇듯 잔혹한 종파주의적 테러리즘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의 동생이자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인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에게 얼마 전 미국의 한 여대생은 “주지사의 형이 IS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악몽 같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패권주의에 사로잡힌 미국은 후세인과 빈 라덴을 제거함으로써 히틀러와 폴 포트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이브라힘을 21세기 칼리프로 등극시켰다. 그러고 보면 니체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너무 오래도록 들여다본다면 곧 그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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