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채식축제 갔더니 소시지에 치맥까지?

알림

채식축제 갔더니 소시지에 치맥까지?

입력
2016.05.25 14:10
0 0

‘채식주의자’ 열풍이다. 채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얘기다. 자연히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소설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채식하는 사람들 중에는 주인공 영혜의 돌연한 채식 선언에 보이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에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공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회식의 꽃은 삼겹살이고, ‘치느님’(치킨과 하느님을 합친 신조어)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될 정도로 육식 위주인 사회. 이 속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최근 이 별종들의 숫자가 꽤 많아지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서울혁신파크에서는 제 1회 ‘비건 페스티벌 코리아(Vegan Festival Korea)’가 개최되었다.

‘비거니즘(Veganism)’이란 육류뿐 아니라 생선, 유제품, 달걀, 꿀 등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을 뜻한다. 최근에는 식습관보다 의미가 더 넓어졌다. 가죽, 양모, 오리털, 실크 등 동물성 원료를 사용한 의류나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 등, 동물의 것을 취하지 않으면서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일컫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날 무더운 날씨에도 1,500여명의 시민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채식이라고 새파란 풀만 씹어 먹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버터와 달걀을 쓰지 않은 빵과 케이크, 두유로 만든 아이스크림부터 코코넛유를 사용한 치즈, 콩단백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햄버거와 핫도그, 심지어 ‘치맥’(치킨과 맥주)도 등장했다. 동물성 섬유를 사용하지 않은 의류, 재활용 소재를 이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 제품 등 동물복지와 환경을 고려한 브랜드들도 눈에 띄었다.

제1회 비건 페스티벌 코리아에서 ‘비건 치킨’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Vegan Festival Korea
제1회 비건 페스티벌 코리아에서 ‘비건 치킨’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Vegan Festival Korea
채식이라고 풀만 먹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동물성이 아닌 재료로 만든 소시지와 달걀 후라이도 있다. Vegan Fesival Korea
채식이라고 풀만 먹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동물성이 아닌 재료로 만든 소시지와 달걀 후라이도 있다. Vegan Fesival Korea

채식을 하면서 식당에서 ‘먹고 싶은 것’보다 ‘먹을 수 있는 것’을 고르느라 전전긍긍하던 사람들은 모처럼 넓어진 선택의 폭에,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호사를 누렸다. 콩버거를 먹기 위해 뙤약볕 아래 길게 늘어선 줄에서 평소 치킨과 라면이 주식이라는 참가자를 만났다. “처음 접해보는 문화인데 신기하다”며 콩으로 만든 고기가 생각보다 맛있다고 즐거워했다.

채식 햄버거 업체 콩스버거에서 준비한 콩버거는 행사 마감도 전에 품절됐다. Vegan Festival Korea
채식 햄버거 업체 콩스버거에서 준비한 콩버거는 행사 마감도 전에 품절됐다. Vegan Festival Korea

페스티벌 기획단의 최서연씨는 “채식, 환경, 동물문제는 이제 소외된 이슈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라며 “앞으로 비건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강아지 공장’의 모습이 방영되어 공분을 샀다. 그러나 ‘삼겹살, 치킨’이 되기 위해 길러지는 돼지, 닭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케이지에서 새끼를 빼는 기계로 취급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미 돼지는 ‘스톨’이라고 부르는 자기 몸 크기의 분만 틀에 갇혀 평생 새끼를 낳고 임신하기를 반복한다. 엎드린 자세에서 앉고 일어서는 것만 가능할 뿐, 다리를 쭉 펴고 눕거나 같은 자리에서 뒤를 돌아볼 수도 없다. 산란계 농장에서 닭 한 마리에게 허용된 공간은 A4용지 반장의 크기. 날개를 한 번 펴 볼 수도 없는 공간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들이 다른 ‘상품’을 공격해 상처를 입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끼돼지는 꼬리가 잘리고, 닭은 부리가 잘린다. 면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길러놓고, 동물전염병이 퍼지면 마치 동물의 잘못인 양 대량으로 살처분하기를 반복한다.

어미돼지는 스톨이라 불리는 철제 우리에 갇혀 평생 새끼만 낳는다. Aussie Farms
어미돼지는 스톨이라 불리는 철제 우리에 갇혀 평생 새끼만 낳는다. Aussie Farms

환경보호운동가로도 잘 알려진 영화 ‘타이타닉’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육류를 먹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1년 완전채식을 시작한 후 캘리포니아에 비건 학교를 세울 정도로 열정적인 그의 주장은 과학적으로도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8%에 달한다. 이는 모든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다 합친 양보다 많다. 가공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까지 합하면 무려 전체 온실가스의 51%를 차지한다.

가축을 먹이기 위한 목초지와 사료 생산을 위해 전 세계 70%의 농지가 사용된다. 식용으로 길러지는 13억 마리의 소는 방귀와 트림으로 일 년에 1억 톤의 메탄가스(이산화탄소의 23배 온난화 효과)를 방출한다.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식물성 재료로 만든 고기를 개발하는 푸드테크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임파서블 푸드’, ‘비욘드 미트’ 등 식물성 원료로 고기를 만드는 대체식품 스타트업에는 빌 게이츠, 구글 등 거물들이 투자했다. 육류에 길들여진 입맛을 충족시키면서 콜레스테롤, 트랜스지방은 없애고 양질의 식물성 단백질을 공급해 외국에서는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실험실에서 소의 근육을 배양해서 만든 세포 배양육도 개발이 한창이다. 모조 고기가 아닌 ‘진짜 고기’면서 동물을 사육, 도살하지 않아도 생산이 가능해 동물복지문제와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 3월 영국 옥스포드 대학 연구팀은 인류가 채소와 과일 위주의 식습관으로 전환한다면 2050년까지 800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붉은 고기 소비를 줄이고 적절한 양의 채소를 섭취하면 비만증 등 질병이 감소되고, 이는 자연히 의료비용 감소로 이어져 일 년에 7,000억~ 1조 달러의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채식한다는 사람에게 풀도 먹지 말라고 조롱한다던가, 일주일에 두세 번 먹던 치킨을 한 달에 한번으로 줄이겠다는 사람에게 “그럴 거면 그냥 먹어”라고 면박을 주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굳이 무슨 ‘주의자’가 되거나 ‘~이즘’에 따른 엄격한 생활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열 번의 선택 중 한 번이라도 습관이나 편리함보다 고통 받는 동물과 병든 지구를 배려한 선택을 해보자. 완벽하지 않다고 스스로 좌절하거나 남의 노력을 위선이라고 폄훼하는 대신, ‘한 사람이 한 번에 한 가지씩' 실천한다면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좀 더 숨 쉬고 살기 편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형주 동물보호 활동가

동그람이 페이스북 바로가기

동그람이 카카오채널 바로가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