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대화도 없이 정상 담판 제안
북미관계 한방에 회복 ‘히든카드’
정상국가 지도자 각인 전략도
북미수교ㆍ비핵화 구상 다 짜놓고
현재의 핵-제재 해제 ‘딜’ 나설 듯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던진 북미정상회담 카드는 대립으로 치달았던 북미관계를 단번에 도약시켜 제재를 탈피하기 위한 승부수로 평가된다. 예비 대화를 과감하게 건너 뛰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서 독재자가 아닌 정상 국가 지도자로 인정받겠다는 전략도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이 북미수교라는 최종 목표로의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겠다는 김 위원장 표정에는 자신감과 절박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최대의 압박 작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과 미국과 담판 지을 수 있을 정도의 핵무력을 완성했다는 자신감 등 두 가지 극단적 상황이 혼재해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과 거래할 수 있을 정도의 핵무력과 미국의 대북제재로부터 긴급히 대피해야 할 필요성이 북미정상회담이라는 파격 카드를 던지게 했다는 뜻이다.
특히 북미정상회담 제안은 북미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탐색적 대화 등을 거칠 경우 비핵화 의지를 대화 단계별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상 간 대화를 먼저 한 뒤 하부 레벨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수순을 밟으면 관계 정상화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탐색적 대화니 예비 대화니 거치지 말고 (정상끼리) 직접 만나 일괄타결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례 없는 북미정상 간 만남이라는 카드를 던졌다면 김정은 위원장 머릿속엔 이미 북미수교 구상까지 짜여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 체제 보장의 필요 조건인 북미 간 수교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미관계를 개선시켜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고립도 탈피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도 “9월 9일 정권수립 7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행동일 수 있다”며 “북한이 하기에 따라 북미수교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미관계 정상화가 목표라면 그 반대 급부인 비핵화 전략 수립도 끝마쳤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미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며 모라토리엄(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더 이상의 핵개발은 멈추겠다고 선언, ‘미래의 핵’을 먼저 포기한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은 이미 만들어진 ‘현재의 핵’을 협상물로 올려 단계 별로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교가 안팎에선 김 위원장이 밝히고 있는 비핵화 의지가 한미가 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도 여전하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위성락 서울대 교수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시작되는 북핵 대화라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며 “많은 장애들이 생길 수 있는 등 결렬과 협상이 반복됐던 역사도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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