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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는 멋진데 셰프의 노동은 왜 불편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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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는 멋진데 셰프의 노동은 왜 불편한가요”

입력
2016.03.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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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논현동 북티크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 기념 북콘서트에서 ‘노동여지도’를 쓴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집행위원이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9일 서울 논현동 북티크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 기념 북콘서트에서 ‘노동여지도’를 쓴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집행위원이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조금 섭섭했습니다. 책 제목이‘노동여지도’가 아니라 ‘직업여지도’였으면 학부모님들 관심이 커졌을까요. 그런데 노동 없는 직업 있나요? 직업이라는 게 결국 노동이잖아요. ‘노동’이라는 말에 왜 그리 많은 오해가 덧씌워진 걸까요?”

9일 서울 논현동 콜라보서점 북티크에서 열린 56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공동수상작 ‘노동여지도’(알마) 북콘서트에서 저자 박점규씨는 아쉬움부터 털어놨다. 박씨는 노동운동가다. 더구나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집행위원이다. 노동 주류도 아니라 비정규직이란 비주류에 집중했다. 평탄한 길일 리가 없다. 남 일인 양 “대기업이 낸 이런저런 민사소송을 합치면 제 몸값이 22억원쯤 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진짜 왜 이럴까 싶어, 서울ㆍ부산ㆍ울산 등 우리나라 대도시 26곳을 돌면서 비정규직의 실태를 생생하게 기록해냈다. 땀과 열의, 생생한 현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상을 받은 뒤 가장 큰 장점은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예전엔 노동운동에 관련된 단체나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면, 지금은 구청에서 불러서 직업에 대한 설명도 하게 되고 연구자들 네트워크에 가서 발표도 합니다.” 그러나 반응이 확 달아오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노동’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모두들 빨간 조끼 입고 머리띠 두르고 거리에 나앉아 구호를 외치는 모습만을 자동적으로 떠올려서다.

그러나 이런 노동관은 외눈박이다. 요즘 소위 ‘먹방’이 뜨면서 ‘셰프’ 직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간지에 직업을 소개하는 코너 연재를 맡으면서 하루는 셰프에 대한 글을 썼어요. 하루 종일 일하는 걸 지켜본 뒤 그가 하루에 어떤 노동을 진행하는 지, 직업의 미래, 고충, 아쉬움 같은 걸 모아서 썼더니 딸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안하고 싶다 그러더라고요. 셰프라는 직업은 멋지고, 셰프로서의 노동은 불편한 걸까요.”

비정규직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비정규직은 도처에 있지만, 우리는 눈을 돌려 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생각을 않는다. 박씨는 이사 갈 때 경험을 떠올려보라 했다. 그는 “에어컨 같은 전자제품들, 정수기, 도시가스, 케이블이나 인터넷방송 같은 것들을 떼어내고 설치하는 이들이 바로 비정규직”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비정규직은 늘 그렇게 곁에서 만나는 일들이다. 이들은 정규직과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은 정규직의 49.5%정도만 받는다.

임금이 절반이니 기업들은 이를 활용하기 위한 기묘한 방법들을 다 짜낸다. 기아차 모닝과 레이를 생산하는 동희오토를 사례로 들었다. 기아차와 동희오토가 5대 5 출자로 합작법인을 만든 뒤 그 아래 14개 업체에 고용 하청을 주는 방식이다. “기아차 공장에서 기아차를 생산하는데,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 1,300여명은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합작법인을 만들고 용역을 주는 형태로 ‘정규직 0명’ 공장을 만든 겁니다.”

노동계의 문제제기로 뒤늦게 정부가 규제안을 내놨지만 허점투성이다. “비정규직 고용 규모를 밝히도록 한 고용형태공시제가 도입됐습니다. 그럼 동희오토가 ‘비정규직 1,300여명입니다’라고 공시했을까요. 아뇨. ‘해당사항 없음’입니다. 정규직 300명 이상 기업만 공시 대상이니까요.” 그나마 안정적이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들도 민간 기업의 효율성을 본받겠다 따라 나서면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 노동자를 이렇게 막 대하니,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도 한국인이라면 그렇게 대해도 되는 줄 안다. “북유럽 노동선진국가라는 곳의 스카니아사는 한 때 어떻게 했는 줄 아십니까. 영업실적이 부진하다니까 직원들을 서해안 해병대 캠프에 보냅니다. 북유럽 자기 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을 한국에서는 손쉽게 합니다. 왜냐. 한국은 원래 그렇게 하는 나라니까요. 그렇게 해도 되는 나라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기에 ‘노동여지도’를 낸 박씨의 소원은 딱 하나다. “이 책을 통해 노동이란 단어가 조금이라도 더 친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북콘서트는 16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주자평전’(역사비평)을 번역한 김태완 지혜학교 철학연구소장이 진행한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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