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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가르치러 갔다, 감동 배우고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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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가르치러 갔다, 감동 배우고 왔죠

입력
2014.12.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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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생 20여명에 사진·미술 교육...작품에 대한 충분한 대화로 수업 진행

무작정 찍기만 한 아이들 3개월 후엔 자신의 고민과 생각 담긴 사진 제출

베트남 사파 지역 학생들이 15일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조각상 위에 올려놓고 눈을 찾는 '내 눈은 어디 있지'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베트남 사파 지역 학생들이 15일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조각상 위에 올려놓고 눈을 찾는 '내 눈은 어디 있지'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베트남 오지 사파에서 3개월씩 두 차례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펼친 장근범 사진작가가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현지 학생에게서 받은 감사의 편지를 내보이고 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베트남 오지 사파에서 3개월씩 두 차례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펼친 장근범 사진작가가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현지 학생에게서 받은 감사의 편지를 내보이고 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신짜오 한꿕. 깜언 타이 장(안녕 대한민국. 고마워요, 장 선생님).”

지난달 15일 베트남 북부 중국 접경지역인 사파. 수도 하노이에서 기차로 12시간을 달린 뒤 또다시 차량으로 1시간 가량 굽이진 산길을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산간 오지 마을이다. 이곳 중앙공원에서 이 지역 초ㆍ중등 학생 20여명이 3개월 동안 배우고 익힌 솜씨를 발휘해 사진ㆍ미술 작품 300여 점을 발표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작품은 물론 전시회 기획과 구성, 설치까지 모두 학생들이 직접 했다. 인근 주민들까지 소문을 듣고 모이는 바람에 전시회는 마을 잔치를 방불케 했다.

지도교사 장근범(34) 사진작가가 여한아, 김민지 미술강사와 함께 이곳에 온 것은 지난 9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프로그램’의 일환인데,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11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사진과 미술을 중심으로 현지 학생들에게 강습이 진행됐다. 베트남은 최근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교육열이 높아지고 있고 사파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교사들의 접근이 비교적 수월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ㆍ예술 교육의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입시 위주의 교육과 열악한 시설, 예술교사 부족 등으로 제대로 된 교육은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공지가 나가자마자 금세 정원이 찼다.

장 작가 팀은 인터뷰 방식의 수업을 지향했다. 학생 3명이 팀을 이뤄 사진ㆍ미술 대상자와 대화한 뒤 작품을 완성하도록 유도했다.

“사제 간 수직적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이라 처음엔 어색해 했지만 점차 달라졌습니다.” 현지 교사들도 포기한 말썽꾸러기이자 수업 방해꾼인 킴썬(10)의 변화는 놀랄 만 했다. 장 작가가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얘기를 들려주자 나중에는 아예 사진기를 빌려 스스로 사진을 찍는 모범생으로 변모했다. 내성적인 빙(15)도 많은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생각과 이해의 폭도 깊어졌다.

장 작가는 “나를 찍는 사진이 아닌 내가 찍는 사진을 강조했다”며 “처음에는 무작정 사진을 찍어 결과물만 제출하려던 아이들이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담아내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학생들 스스로 10여명 가량의 ‘동아리’를 구성, 교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자기들이 또래 친구들에게 문화ㆍ예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매개자 시스템’을 구축하는 모습에 놀랐다.

첫 수업은 정말 가슴 떨리고 신나는 일이지만, 마지막 수업은 정말 힘들었다. 귀국길에 학생들이 가방에 몰래 넣어둔 편지 3통을 발견하고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었다.

장 작가는 ‘가르치려고’ 베트남에 갔지만 배운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처음엔 문화 선진국에서 공부한 내가 후진국인 베트남에 뭔가를 가르치고 갔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있듯,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글ㆍ사진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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