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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 대한 인류의 도전!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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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 대한 인류의 도전! 냉장고

입력
2016.07.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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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덩이 얼음을 얼리기 위해’ 인류는 지난한 발명의 역사를 이어가야 했다. 불과 100여 년 전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된 후 쏟아진 혁신적인 냉각 기술은 공상 과학소설에서나 나올 만 한 순간이동장치 영생 인공지능 컴퓨터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 덩이 얼음을 얼리기 위해’ 인류는 지난한 발명의 역사를 이어가야 했다. 불과 100여 년 전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된 후 쏟아진 혁신적인 냉각 기술은 공상 과학소설에서나 나올 만 한 순간이동장치 영생 인공지능 컴퓨터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냉장고의 탄생

톰 잭슨 지음ㆍ김희봉 옮김

MID발행ㆍ352쪽ㆍ1만6,000원

‘1940년대 중반 미국 농촌전략화사업청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기세탁기와 전기다리미가 도입된 이후 17킬로그램에 달하는 빨래를 세탁하는 시간이 4시간에서 41분으로 줄어들어 거의 6분의 1로 단축되었고, 이를 다리미질하는 데 드는 시간도 4시간 30분에서 1시간 45분이 되어 5분의 2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자 장하준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인터넷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세탁기, 진공청소기, 가스레인지 등 주방시설로, 이들이 가사노동을 현격히 줄여 여성의 노동시장진출을 촉진했다고 진단한다. ‘인류의 은인’ 식기세척기를 비롯해 주방 기기가 하나씩 호출, 그 노고가 치하되지만 이 명예의 전당에서 제외된 단 하나의 주방 기기가 있으니 그건 바로 냉.장.고. ‘냉장의 역사는 부패와의 투쟁의 역사’(박민규 ‘카스테라’)인 바, 냉장고는 가사노동의 해방도구가 아닌 부(음식)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원동력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현대의 도시를 만드는 것은 냉장고”라고 단언하는 저자는 ‘냉장고의 탄생’에서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차가움에 대한 인류 갈망의 역사를 추적한다. 산업화된 국가에서 편재하기 때문에 역으로 무관심의 대상이 된 냉장고는 유통망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21세기 인류 생활에서 중심이 됐다.

냉장고의 원형은 1750년대에, 오늘날의 냉각 원리는 1834년에, 현대적 의미의 냉장고는 1862년에 발명됐지만 냉장고에 관한 인간의 도전은 기원전 18세기부터 시작됐다. 당시 유프라테스강 서쪽을 지배하던 짐리 림은 차가운 음료를 마시기 위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얼음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구덩이를 파고 목재를 덧댄 뒤 녹은 물이 빠지는 배수로를 낸 다음 그 속에 얼음을 보관했다.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는 성질이 있다. 이 일방통행의 열역학 법칙을 깨는 게 바로 냉장고다. 냉장고는 차가운 냉장실 안의 열을 밖으로 밀어낸다. 10억년 전 불을 다스린 인간이 불과 100여 년 전에야 얼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의 순리를 잠시나마 거스를 수 있는 기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은 가지고 있던 물질과 자연, 세계에 대한 관념을 바꾸어야 했고, 열의 본질을 이해해야만 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라부아지에 등 내로라 하는 현자들이 줄줄이 물질의 본질에 대해 논쟁을 벌였고 훅, 뉴턴 등이 온도의 표준을 정했다. 온도계, 증기기관, 전기 모터 등 산업화의 견인차들이 발명되며 얼음을 보관하는 수준이었던 원시적인 형태의 냉장고는 비약적으로 진화한다. 냉각 기술 발전으로 열대 과일 같은 식품의 유통이 가능해지자 냉동열차, 냉동트럭, 냉동 컨테이너 등이 등장했고 냉장 식품을 대량으로 파는 슈퍼마켓, 대형마트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냉장고가 유통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문명의 중심이 된다.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이 축적의 기술’은 이제 극저온기술로 이어져 줄기세포 보관, MRI, 자기부상 열차 기술로 변주된다.

화학, 문화인류학, 역사학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촘촘한 논증,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성우 내레이션이 귓가에 울리는 듯한 맛깔진 서술이 어우러진 책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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