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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반대급부

입력
2015.01.0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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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세대의 신산(辛酸)한 생애를 그린 국산 영화 ‘국제시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읽어낸 건 애국심이다. 구랍 29일 그는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라며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객 거개 반응을 보면 이는 시대착오적 오독이다. 맹목적 애국을 강요한 군사독재 정권은 민주국 시민에게 희화화 대상일 뿐이다. 사진은 박 대통령이 예로 든 영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산업화 세대의 신산(辛酸)한 생애를 그린 국산 영화 ‘국제시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읽어낸 건 애국심이다. 구랍 29일 그는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라며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객 거개 반응을 보면 이는 시대착오적 오독이다. 맹목적 애국을 강요한 군사독재 정권은 민주국 시민에게 희화화 대상일 뿐이다. 사진은 박 대통령이 예로 든 영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재외동포한텐 조국이 뒷배다. 힘이 된다. 하지만 때로 슬하 국민에겐 편애하는 가부장이다. 버린 자식더러 사랑하라 으른다. 반대급부가 애국엔 필요하다. 봉건시대로 돌아갈 순 없다.

“1970, 80년대는 저녁 해 질 무렵 국기하강식과 함께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이 시점에서 길 가던 모든 사람이 발길을 멈추고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였다. (…) 그만큼 애국이라는 코드는 요즘 말로 하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넘사벽”의 코드였다. 이러한 애국가와 “동작 그만”의 장면들이 가끔 영화의 소재로 재생되는 경우가 있는데, 얼마 전에 개봉한 어떤 영화에서는 애국가가 나오자 부부싸움을 멈추는 장면이 있어서 화제가 되었다. 이 장면은 영화의 희극적 요소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애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실 국가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애국주의가 나쁠 이유는 없다. 국가가 없으면, 또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 세계 속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차별과 억압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 그런데 2015년 새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면서도 이 애국이라는 코드가 젊은이들과 일반인들에게 그리 크게 어필하지 않는다. 나라가 어려울 때면 나라를 잃었던 구한말의 상황을 들추어내서 지금과 같이 국가가 분열되고, 국민들이 해이해지면 다시 나라를 잃을지 모를 것이라는 신문의 사설과 시론, 대중 강연들이 어김없이 나오지만 정말 나라를 잃을지 모른다는 조바심을 갖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 우리의 광복이 시작된 해 1945년에는 주권국가의 숫자가 약 70여개 존재했다. 그리고 70년이 흐른 현재 2015년 주권국가의 숫자는 190개를 넘어섰다.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자들이 걱정하고, 경고하는 것과 달리 존망의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사라지지 않고 늘어나기만 했다. (…)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대한민국의 변화 속에서 다시 국민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를 위해 충성을 맹세하라고 한다면 지금의 젊은이들과 국민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이제는 국가가 우리를 위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주고, 복지를 늘려주고, 양질의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선진국에 못지않은 녹색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인간적인 교육을 받게 하고, 상위 1%만 계속 부자가 되는 구조를 바꿔주고, 어느 집에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할 의욕과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게 해주고, 은퇴해도 걱정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국가의 생존이라는 단순한 국가이익을 넘어서서 어떠한 국가로 생존할 것인가로 국가이익의 내용을 새로 채워야 한다. 복지국가인가, 정의로운 국가인가, 환경이 잘 보존된 국가인가, 행복한 국가인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는 국가인가, 창조적인 국가인가 등이 중요한 국가이익의 기준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를 위하여 부부싸움도 멈추는 시대에서, 이제는 정말로 생계형 부부싸움을 멈출 수 있도록 국가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길 염원한다.”

-부부싸움 멈춰줄 국가가 필요하다(경향신문 ‘정동칼럼’ㆍ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 전문 보기

“‘애국가’ 가사에는 국가의 지향성이 없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나라 만세이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자는 맹목적 애국이 있다. (…) 국민에게는 무조건적인 애국을 강요하면서 국가와 정부는 과연 국민을 무조건 사랑하나? 원제는 ‘토착민들’(Indigenes)이지만 영어 제목을 번역하여 국내에 개봉했던 프랑스 영화 ‘영광의 날들’은 2차대전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과 식민국가 출신 군인 간의 차별을 다뤘다. (…) 프랑스 정부는 병사를 모집하기 위해 이 토착민들에게 ‘프랑스 국민’이라고 꼬드겼지만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금 차별을 했다. (…) “독일군의 총알은 우리(토착민)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명대사다. (…) 정치인이 영화를 보고 반드시 영향을 받아서 좋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이들의 상상력이 너무 딱하고 답답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과거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 ‘웰컴 투 동막골’을 보고 당직자회의에서 뱉은 말을 기억한다. “인민군은 휴머니스트처럼, 국군과 미군은 전쟁광처럼” 그렸다고 비판했다. 많은 이들이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영웅서사를 강조하고, ‘종미’의 관점으로 아무데나 반미라는 낙인을 찍곤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전에 ‘빌리 엘리어트’를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그 영화에서 광부인 빌리 아버지를 통해 노동자의 삶을 가혹하게 짓밟는 정부의 정책을 봤으리라 생각하긴 어렵다. ‘역경을 극복한 위대한 빌리’에게 마음이 갔을 테고 이 위대한 개인이 국가의 훌륭한 자원이라 여겼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 80년대의 문턱도 넘지 않은 듯 온 마음이 꼿꼿하게 ‘그때 그 시절’에 고정되어 있다. 영화 ‘국제시장’을 언급하며 그가 내세운 것은 역시나 애국심일 뿐이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면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배례’를 하는 사회를 그는 그리워한다. 강제성에 길들여진, 두려움이 내재된 습관을 사랑이라 착각한다. (…) 21세기의 시민이 20세기의 영광스러운 독재시절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 대통령을 보고 있자니 1년이 10년 같다.”

-대통령의 영화(1월 1일자 한겨레 ‘야! 한국사회’ㆍ이라영 집필노동자) ☞ 전문 보기

장년 세대 삶은 힘겨웠다. 가족 건사에 도덕은 사치였다. 불온을 피하려면 별 도리 없었다. 봉합 힘든 신구 갈등과 망가진 미래는 국가 탓이다. 사다리 없는 생애가 청년 앞에 놓였다.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한 줄 소개는 이렇다.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 영화 ‘해운대’로 10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때아닌 이념 논쟁의 대상이다. 지난해 말 영화평론가 허지웅씨가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다.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라고 발언하면서다. 88만원 세대가 양산되고 젊은이들이 ‘미생’(未生)으로 내몰리는 경제·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놓은 산업화 세대들이 ‘이만큼 산 것은 모두 우리 덕분이다’라고 큰소리친다는 하소연으로 읽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월 29일 ‘국제시장’을 두고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라며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자 논란은 커졌다. ‘국제시장’이 애국심에 호소하는 등 과도한 국가주의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다. (…) 윤덕수는 사실 평범한 아버지는 아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1960년대 독일 광부로 가고,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 기술자·군인으로 참전하고, 1980년대에 중동 사막의 땡볕에서 일한 그 근성을 평범하다 할 수 없다. (…) 못내 불편한 것은 그런 근성 있는 아버지들 뒤에 숨어서 정부가 자신들의 무능과 정책의 실패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 빈부 격차는 확대돼 아랫목은 쩔쩔 끓어 장판이 다 타버릴 정도지만 윗목은 냉골이다. ‘국제시장’이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려면 “선량하게만 살지말고 좋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라”던 브레히트를 기억해야 했다.”

-‘국제시장’(서울신문 ‘씨줄날줄’ㆍ문소영 논설위원) ☞ 전문 보기

“방학인데도 대학가에 분노의 대자보가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 경희대에는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등장했다. ‘최경환 학생, 답안지 받아가세요’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시험지 형식을 빌렸다. ‘오늘날 한국 경제위기의 해결 방법을 쓰시오’라는 문제에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부동산 경기 활성화,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을 답안으로 채웠다. 채점 결과는 낙제점인 F였다. 지난달 연세대와 고려대 등에 ‘최씨 아저씨에게 보내는 협박편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 “미래를 갉아먹고 지금 당장 얼마나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정규직 갉아먹고 ‘노동자 모두’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습니까? 청년세대에게 짐을 미뤄두고 장년세대는 얼마나 마음 편할 수 있습니까?” (…) 요즘 20대는 ‘3포 세대’(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넘어 ‘5포 세대’(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세대)로 전락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청년들의 불안은 정부와 정치권,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다. (…)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쓰 노리토시의 책 절망한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기불황을 뜻하는‘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면서 젊은이들은 희망을 버렸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20대의 70%가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 모순을 파고든 저자는 미래가 더 나아지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모든 가능성이 막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어떤가. 일본처럼 자기 최면을 걸지 않고 분노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미래가 없으니 그들처럼 작은 현실에 만족하라고 해야 할까.”

-미생 세대의 분노(한국일보 ‘지평선’ㆍ이충재 논설위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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