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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동진하는 中, 서진하는 美

입력
2014.07.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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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요즘 동쪽에 관심이 많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4일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 데 이어 15~23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쿠바 등 중남미 4개국을 순방했다. 모두 중국의 동방에 자리한 나라다. 중국은 지금 이들 국가와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어 한다.

반면 미국은 서진(西進)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우리나라를 비롯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4개국을 순방했다. 하나같이 미국의 서쪽에 있는 나라다. 이들 국가와 전통적 우의를 굳건히 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의지다.

중국의 동진(東進)과 미국의 서진은 사실상 서로를 의식한 행보다. 미국과 혈맹인 우리나라에 이어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중남미 국가를 잇따라 찾은 시 주석의 동선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한중 관계를 ‘오랜 친구’(老朋友)라고 표현하며 한미 관계보다 더 역사가 깊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베네수엘라에서는 반미의 선봉에 섰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미국과 적대 관계인 쿠바에선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 ‘존경하는 카스트로 동지’라며 경의도 표했다. 시 주석이 미국 코 앞까지 가고도 유독 미국은 들르지 않은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당시 중국은 쏙 뺀 채 마치 중국을 포위하고 있는 듯한 아시아 국가만 차례로 돌았다. 일본에선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며 일본 손도 들어줬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중국봉쇄책’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문제는 중국의 동진과 미국의 서진이 충돌하고 있는 한가운데 우리나라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4월 서진과 시 주석의 7월 동진에 우리나라가 모두 포함된 점이 이를 대변한다. 그렇지 않아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우리의 구조적 모순은 앞으로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중 사이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현명한 줄타기 외교가 절실해졌다는 이야기가 최근 부쩍 는 이유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눈치만 보면서 처신하는 것은 신의 없는 ‘박쥐’로 오해 받을 수 있다. 결정적 순간엔 양쪽에서 모두 외면당할 수 있다. 외교의 힘도 결국은 국력에서 나온다. 우리가 한 때 나라를 잃었던 것도 외교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지도층이 민심을 잃고 국력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외교나 외세에 기대는 발상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120년 전에도 이러한 사고가 결국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 들여 남의 나라가 우리 땅에서 전쟁을 벌이는 황당한 비극을 낳았다. 어느 쪽에 서야 할 지 고민하고 방황할 게 아니라 스스로 부강한 민족과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게 통한의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진하는 미국과 동진하는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갈 방향을 찾는다면 바로 북쪽이다. 하루빨리 북한과 만나 얘기해야 한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려 서로 싸우는 건 크게 보면 내부 분열이다. 흩어진 민족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더구나 서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외세와 손을 잡는 데만 경쟁하듯 열중하는 것은 호전적인 주변 강국에게 어부지리만 주는 일이다. 그 보다는 남북이 대화를 통해 민족의 운명을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가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힘을 쓰는 게 절실하다. 청일전쟁 120주년을 맞아 국제 정세가 소용돌이치는 지금, 남북이 적어도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7ㆍ4 남북공동성명이라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민족적 굴욕이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책략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유업을 잇는 일이기도 하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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