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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ㆍ보험사 '즉시연금 미지급금'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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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ㆍ보험사 '즉시연금 미지급금' 충돌

입력
2018.07.25 04:40
수정
2018.07.26 15:5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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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비 제외로 최소보장액 못받은

가입자 민원 신청으로 논란 촉발

당국 “약관에 사업비 제외 없다”

모든 가입자에 소급 지급 독려

미지급금 최대 1조원 달해

업계 “보험 특성 무시한 처사”

법적 근거 불분명하고 배임 소지

특정 민원 일괄 적용 등 논란

[저작권 한국일보]즉시연금-미지급금-사태-일지/ 강준구 기자/2018-07-2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즉시연금-미지급금-사태-일지/ 강준구 기자/2018-07-24(한국일보)

강모씨는 지난 2012년9월 삼성생명에 10억원이란 거액을 한 번에 내고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했다. 이 상품은 보험사에 일시불 목돈을 맡기면 보험사가 이를 운용한 수익금으로 그 다음달부터 곧 바로 가입자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만기가 되면 원금까지 돌려주도록 설계돼 있었다. 당시 보험업체들이 판매에 열을 올리며 즉시연금 상품은 큰 인기를 끌었다. 강씨도 매월 최저보증이율(2.5%)이 적용된 최소보장 연금액(208만원)을 지급받는 것으로 알고 가입했다. 최초 3년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저금리가 지속되며 2015년 10월부터는 208만원보다 낮은 연금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연금액은 13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삼성생명이 지급한 연금액이 쪼그라든 것은 저금리로 운용 수익이 낮아진 데다가 자산 운용에 필요한 사업비(설계사 수당 등) 등 명목으로 일정액을 연금액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특히 만기환급형 상품은 운용수익을 그대로 가입자에게 주는 게 아니라 만기보험금 지급을 위해 운용수익에서 일정액을 차감(준비금)한 뒤 나머지를 연금으로 주는 구조다. 문제는 보험사 약관엔 전체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뗀 뒤 공시이율을 곱해 계산된 운용수익을 연금으로 지급한다고만 돼 있지, 만기보험금 지급을 위해 운용수익의 일부분을 추가로 떼어둔다는 내용은 없다는 데 있다. 이에 강씨는 지난해 6월 금감원 산하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208만원보다 적게 지급된 연금액을 돌려 달라며 민원을 냈다.

분조위는 지난해 11월 강씨의 손을 들어줬다. 분조위는 삼성생명 즉시연금 약관에 연금 지급 시 사업비를 제외한다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적혀있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삼성생명은 “약관에 ‘연금액은 보험금 산출방법서에 따라 지급한다’고 적혀 있고, 산출방법서에는 사업비 공제 내용이 있다”고 맞섰지만, 소비자가 산출방법서를 알 길이 없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성생명은 결국 지난 1월 문제의 약관을 수정했고 한 달 뒤 분조위 결정을 수용했다. 보험사 스스로 약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여기까진 금감원이 개별 소비자 민원에 조정 결정을 내린 것이어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지난 3월 전 보험사에 강씨처럼 즉시연금에 가입한 뒤 최소보장 연금액보다 적은 연금액을 받은 모든 가입자들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할 것을 독려하고 나서면서 ‘일괄구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똑같은 상품에 가입한 계약자들이 피해를 본 게 명백한 만큼 이를 감안해 분조위 결정을 따르라고 권고한 것”이라며 “2013년 동양사태 때도 일괄구제를 통해 소비자 권리를 보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험업계에선 난색을 표했다. 원칙적으로 금융사가 특정 민원 사건의 조정 결과를 다른 계약자에게까지 똑같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없다. 분조위 결정에 따라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금감원이 일괄구제를 공문 등 형태로 공식 요구한 것도 아니다. 금감원의 권고대로 지급 결정을 할 경우 향후 주주들로부터 배임 혐의로 피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은 말 그대로 민원인이 제기한 분쟁을 조정하는 곳인데 금감원이 이를 마치 대법원 판결처럼 비슷한 사안에 확대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지급금 규모가 꽤 크다는 점도 업계 입장에선 부담이다. 삼성생명은 5만5,000건 4,300억원, 한화생명은 2만5,000건 850억원, 교보생명은 1만5,000건 700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지급 대상을 두고 보험 만기가 끝난 가입자들에게도 소멸시효(3년)를 무시한 채 지급할 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일괄구제는 가장 전향적인 조치"라며 "다른 보험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되지 않도록 당국과 보험사 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문제 제기가 되지도 않은 전체 계약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소비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과도한 규제는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생명은 오는 26일 이사회를 열고 전체 즉시연금 가입자에게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할 지 여부를 결정한다. 삼성생명의 결정은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 다른 생명보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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