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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통해 본 성매매 여성들… "너무도 평범해 놀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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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통해 본 성매매 여성들… "너무도 평범해 놀랄 것"

입력
2015.02.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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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문호씨 '청량리 588' 사진전 열어

낡은 차양막 아래로 새어나오는 붉은 불빛과 길거리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다리를 꼬고 앉은 여자들. 흔히 홍등가라 불리는 성매매 업소 밀집 지역을 이야기하면 떠올리는 풍경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문호(68)씨의 카메라 렌즈는 더 깊은 곳을 향한다. 커튼과 인형으로 가능한 한 ‘여성스럽게’ 꾸며진 방 안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화려한 레이스나 꽃무늬로 장식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고친다. 이따금 렌즈를 응시하는 이들은 뜻 모를 미소를 짓는다. 방 안 선반에는 가톨릭 성가 ‘평화의 기도’가 적힌 액자가 놓여 있다.

조씨는 1984~88년 서울 전농동 588번지, 이른바 ‘청량리 588’의 안팎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누구도 기록하지 못한 것을 내가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야심에 차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매매 여성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게 됐다. “세상은 그들을 ‘더럽다’고 매도하지만 그들은 단지 빈곤하고, 달리 돈을 벌 수단이 없을 뿐입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제 사진을 통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조씨의 사진들은 3월 10일까지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19세 미만 관람불가로 전시되고 ‘청량리 588’(눈빛 발행)이라는 이름의 사진집으로도 묶였다.

다큐멘터리 사진 촬영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 조직폭력배 출신인 성매매 업주들 중에는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폭행한 이가 나중에는 촬영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줬다고 조씨는 말했다. 세상의 날카로운 시선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했던 성매매 여성들도 처음에는 그를 경계했지만 “스스로 인권을 되찾아보자”는 그의 말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특별히 친하게 지낸 성매매 여성 김정숙의 도움을 받아 여러 성매매 여성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조씨는 사진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이 직업인으로 인정받기를 바라왔다. 1990년 프랑스문화원에서 ‘전농동 588 사진전’을 열었다가 크게 좌절했다. 언론은 매춘행위를 소재로 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전시 내용을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정작 그가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성매매 여성들은 아무도 전시장에 찾아오지 못하게 됐다. 그는 “필름을 불태우고 싶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25년이 지난 뒤에야 “그래도 사진은 남겨야겠다 싶어 이번 사진집과 전시를 준비했다”고 그는 말했다.

조씨는 한국의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집 ‘휴먼 1집’을 보고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힘있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이후 강원 정선군의 동강과 서울 인사동을 오가며 변해가는 자연과 사람들의 얼굴을 기록해 왔다. 그는 “사진을 찍으면서 만난 인연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고 믿는다. 예전에 그를 믿고 렌즈 앞에 섰던 성매매 여성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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