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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조사실에서의 대통령들

입력
2017.03.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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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땜장이(대구공고) 출신이고 노태우는 명문고(경북고) 출신인데도 나보다 늘 뒤처져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1995년 12월 3일 내란죄로 체포돼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교도소 과장 방에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처음엔 “피곤하다”며 묵비권을 행사한 그는 “저희도 검사로서 해야 할 일 아니냐”는 설득에 입을 열었다. 달변의 그는 말문이 터지자 농담까지 섞어 가며 대통령 재직 시 일화를 상세히 들려줬다고 한다. 측근들은 “검찰 의도대로 넙죽넙죽 털어놓는다”고 애를 태워야 했다.

▦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1995년 11월 1일 검찰 청사에 소환된 노태우 전 대통령 조사는 녹록하지 않았다. “내가 재임 중에 대검찰청을 짓게 했는데 여기서 조사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수천억 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를 추궁 당하자 그는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에게 그런 실무적인 부분을 기억해 얘기하라고 요구하느냐”며 따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2주 뒤의 재소환 조사에서는 구속을 예상한 듯 체념한 채 “그 사람이 그렇게 진술했다면 맞을 겁니다”며 혐의를 시인했다.

▦ 죽음으로까지 이어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2009년 4월 30일의 검찰 조사는 아직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당시 변호인으로 동석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대단히 건방졌다”고 비판했는데, 이 전 중수부장은 “언짢게 느낄 만한 상황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신문에 “가족과 측근이 돈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고, 그럴 때마다 밖에서 수사검사인 우병우 중수1과장에게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라”고 메신저로 지시했다고 한다.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 성격상 알면서 진술을 회피하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 오늘 소환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다. 그간의 담화와 인터뷰 등을 보면 의혹을 적극적으로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전직 대통령 조사 경험자들은 “초반 분위기를 잘 조성해 진술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결국은 증거가 관건이므로 진술에 큰 기대를 걸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박 전 대통령 지시를 꼼꼼히 받아 적은 안종범의 56권짜리 업무수첩이 검찰의 가장 큰 무기인 셈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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