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 기자

등록 : 2018.06.19 03:00
수정 : 2018.06.19 09:16

박지성이 말한다 “여기서 포기하면 진짜 최악의 월드컵”

등록 : 2018.06.19 03:00
수정 : 2018.06.19 09:16

“멕시코전, 강한 압박 뚫느냐가 관건

한 방 있는 손흥민이 우리에겐 희망

패배에 대한 비난, 누구도 못 도와

국가대표라면 책임 지고 증명해야”

지난 18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멕시코전 중계를 마치고 국내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박지성 SBS 해설위원. 모스크바=연합뉴스

“너희가 가진 걸 그라운드에 다 쏟아 부었는가?”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37) SBS 해설위원이 태극전사 후배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건 바로 이 말인 듯 했다.

한국은 지난 18일(한국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첫 경기에서 스웨덴에 0-1로 무릎을 꿇었다.최악의 결과다. 한국은 스웨덴보다 더 강한 멕시코, 독일을 상대해야 한다. 16강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하지만 포기는 이르다. 한국은 좋든 싫든 두 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당장 오는 24일 0시 로스토프에서 벌어질 멕시코와 2차전이 중요하다.

스웨덴전에서 드러난 ‘오답노트’와 멕시코전의 ‘정답노트’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스웨덴과 멕시코의 스타일은 천지 차이다. 스웨덴이 수비를 단단히 하고 역습을 노린다면 멕시코는 한국을 상대로 수비 라인을 하프라인 근처까지 끌어올려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스웨덴이 우월한 체격 조건을 밑천 삼아 공중전을 벌였다면 멕시코는 빠르고 화려한 기술을 무기로 내세워 한국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대처는 큰 틀에서 비슷하다. 일단 수비를 단단히 해서 버틴 뒤 역습 한 방으로 상대를 무너뜨려야 한다. 박 위원은 “멕시코전도 마찬가지로 먼저 수비다. 무실점으로 끌고 가다가 한 방으로 이기는 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확률이다”고 밝혔다. 이어 “스웨덴전에서는 손흥민이 몇 차례 상대를 돌파하고도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언제든 하나 터뜨려 줄 수 있는 선수다. 손흥민이라는 선수가 있다는 게 우리에게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전역을 누비며 중계 중인 박 위원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 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와 함께 스웨덴전을 복기하고 멕시코전 전망도 들어봤다.

18일 스웨덴에 패한 뒤 고개 숙인 김민우(12번)을 위로하는 기성용.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다음은 박 위원과 일문일답.

-스웨덴전 경기 총평은.

“1차적인 높이에 대한 경합은 잘 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떨어지는 공에 대한 대처인데 조금 미흡해서 아쉽다. 또 하나는 역습 찬스에서 마무리까지 제대로 가지 못한 거다. 상대가 라인을 올렸을 때 우리가 역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보여주지 못했다. 손흥민과 황희찬이 2~3번 보여줬는데 정교하고 세밀했다면 충분히 상대를 위협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70분까지 무실점으로 버티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65분 페널티킥으로 실점하고 말았다.

“70분 지나면서 스웨덴 몸놀림이 둔해진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체력적 우위에 있었냐고 봤을 때 그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파워프로그램(체력 강화 훈련)을 너무 늦게 한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이번 경기에서 지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체력 부분이 이제 계속 좋아질 거라서 멕시코전에서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1패를 안고 멕시코와 싸워야 하는데.

“스웨덴과는 전혀 스타일이 다른 팀이다. 멕시코는 또 독일과 할 때와는 다르게 나올 것이다. 3백이든 4백이든 우리를 상대로 멕시코는 내리지 않고 라인을 올려서 압박을 할 거다. 우리가 거칠고 빠른 전방 압박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압박만 뚫고 미드필드 지역만 넘어선다면 승산이 있다. 전방 압박 뒤에는 상당히 옅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멕시코가 평가전에서 종종 보여준 약점이다. 그것만 잘 돌파해서 이어진다면 공격 쪽에서는 우리도 스피드 있고 일대일 능력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를 상대하는 우리 수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중요한 건 빌드업(수비에서부터 전방으로 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하며 멕시코의 전방 압박을 견뎌낼 수 있느냐다. 침착하게 빌드업할 수 있느냐, 만약 침착하게 패스플레이가 안 된다면 미리 약속된 플레이를 정해놓고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플랜을 가지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수비 불안 염려가 많이 나왔는데 스웨덴전은 어땠나.

“평가전보다 나아졌다고 본다. 하지만 불안감을 없앨 정도는 아니었다. 상대 높이에 맞서 1차적인 싸움은 잘 했는데 그 이후 동작이 조금 문제였다. 하지만 이는 오늘 경기를 복기하면 다음 경기에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변수는 멕시코 공격은 스웨덴과는 또 다른 유형이라는 점이다. 멕시코는 개인기가 좋고 스피드가 빠른 선수들이 있다. 그럴 경우에는 일대일 상황에서 우리가 이기는 게 좋지만 졌을 때 뚫린 공간을 다른 선수가 얼마나 잘 커버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일대일 상황에 집중하는 것보다 주변 선수가 멕시코 선수에게 돌파 당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늘 도와주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스웨덴전에서 손흥민의 돌파 모습.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우리도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격을 해야 하는데. 공격 해법이 보이나.

“멕시코전은 우리가 분명 이겨야 하는 경기지만 객관적인 전력 차가 있어 우리가 무작정 ‘닥공’(닥치고 공격)을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했다간 대량 실점할 수도 있다. 축구는 90분 경기다. 우리가 가장 높은 확률로 이길 수 있는 게 뭔지 설정해야 한다. 일단 수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건 맞다. 무실점으로 끌고 가서 한 방으로 이기는 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확률의 방법이다. 그 한방은 손흥민의 결정력이 있으니까 기대할 수 있다. 손흥민 같은 선수가 없다면 정말 힘겨운 싸움일 거고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라고 의구심 가질 수 있지만 손흥민이 있다는 게 우리에겐 희망이다. 오늘도 역습 찬스가 났을 때 손흥민과 황희찬이 돌파해서 상대를 무너뜨렸지만 결국 골은 가운데서 터지는데 가운데서 그만큼 똑같은 스피드로 올라와서 쇄도해주는 선수가 없었던 게 아쉬웠다. 우리가 경기 내용에서는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골을 먹지 않는 거고 작은 기회를 살리는 거다.”

-오늘 패배로 또 선수들이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선배 입장에서 조언해준다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경기는 졌고 국가대표라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좋은 경기를 한다면 팬의 생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비드 데 헤아(스페인 주전 골키퍼. 포르투갈과 1차전에서 호날두의 중거리 슛을 빠트려 실점)가 실수를 해서 자국민의 50%가 그의 출전을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가 봐도 스페인의 넘버1 골키퍼지만 자국민의 여론은 그걸 바꿔버리자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거다. 선수는 그걸 딛고 경기장에서 증명해야 한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모두 한국에서 가장 잘 한다는 선수들이 뽑혔다. 선수 스스로가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뭔가를 보여줘서 팬들이 응원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축구대표팀과 스웨덴의 경기가 열린 18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에서 한국이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하자 축구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림 5스웨덴전에서 기성용이 수비하다 넘어진 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오늘 패배로 16강을 위해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물론 결과는 실망스럽다. 우리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고 어찌 보면 최악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2경기 남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진짜 최악의 월드컵이 될 수 있다. 오늘 경기 잊어버리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걸 준비해야 한다.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 전력이 상대보다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걸 다 해 놓고 졌다면 그 결과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다 보여주지도 못하고 지면 그게 너무나 아쉬운 거다. 선수들이 이기겠다는 부담을 버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걸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결과도 따라올 수 있고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F조 4팀의 뚜껑을 열어보니 어떤가.

“그대로다. 독일-멕시코-스웨덴-한국의 순이다. 다만 멕시코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줬고 독일은 못 보여줘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이다. 독일의 ‘디펜딩챔피언 징크스(전 대회 우승 팀은 다음 대회 조별리그에서 탈락)’가 진짜 이어질 것이냐는 지켜봐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됐으면 좋겠지만. 독일이 남은 두 경기 만으로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자칫 독일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독일 입장에서는 스웨덴과 2차전이 우리와 3차전보다 더 중요할 거다. 우리의 다음 상대인 멕시코가 기세 높은 상황이라는 게 우리에게는 안 좋다. 경기 초반에 운이 됐던 뭐가 됐던 간에 선제골만 넣는다면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 더구나 멕시코는 거칠고 흥분을 잘 하는 특징이 있으니 우리가 골만 넣으면 상대를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몰아칠 수 있다. 뚜껑은 열어봐야 하겠지만 다시 강조하고 싶은 건 우리가 갖고 있는 걸 다 그라운드에서 다 쏟아 부을 수 있느냐다.”

-멕시코의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은 어떤 색깔의 사령탑인가.

“멕시코 북중미의 강호지만 월드컵에서도 강 팀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16강이 한계인 팀? 오소리오 감독은 상대에 맞춰서 전술을 다양하게 쓰는 걸 많이 연구한 듯하다. 멕시코가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 약점 물고 늘어지고 상대 강점을 약하게 하면서 경기를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 고민 많이 하는 감독이다. 그렇게 여러 전술을 쓴다는 건 어찌 보면 반대로 봤을 때는 자기 팀만의 색깔이 없이 애매하다는 단점도 있다. 어느 경기든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는 어렵다는 뜻이니까. 멕시코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모르지만 이런 점 때문에 약 팀에게도 잡힐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대표팀도 뚜렷한 색깔이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인데.

“신태용 감독이 맡은 지 얼마 안 됐다.(지난 해 7월 부임) 대표팀은 클럽과 달라서 매일 매일 훈련을 못 한다. 독일의 요하임 뢰브 감독이 12년을 이끌고 있지 않나. 신 감독이 10개월 안에 원하는 색깔을 입히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을 거다. 물론 그 안에 다양한 전술 변화를 꾀하는 바람에 아무래도 우리가 대표팀 색깔이 흐리다고 느낄 수는 있겠다.”

스웨덴전을 심각하게 지켜보는 신태용 감독.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스웨덴에 패한 뒤 고개 숙인 선수들.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맨유 명장 퍼거슨 감독과 오래 있었다. 팀에서 분위기 안 좋을 때도 많았을 텐데 그럴 때 명장들은 어떻게 팀 분위기를 바꾸나. 감독이 “분위기 바꾸자”고 한다고 바뀌지는 않을 텐데.

“맨유에서 분위기 안 좋을 때가 많지는 않아서.(웃음) 당연히 ‘바꿔라’ 해서 바뀌지 않는다. 감독이 팀원 전체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선수 개개인과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감독이 선수에게 내가 널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지금 어떤 상황이고 네가 어떤 역할을 해줬으면 좋을지에 대한 개개인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할 거라 보여진다. 근데 이건 감독 한 명이 할 일이 아니다. 코치 뿐 아니라 베테랑 선수들도 팀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경험 없는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또 어린 선수들은 그런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희생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반전은 일어날 수 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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