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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만 하는 선비? 조선 사대부의 편견을 깨다

입력
2017.01.2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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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석 서유구 초상. 소론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옷 세탁법 등 살림살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유학자라 해서 살림살이에 무심한 건 아니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풍석 서유구 초상. 소론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옷 세탁법 등 살림살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유학자라 해서 살림살이에 무심한 건 아니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학자라 하면, 겉모습에 개의치 않으면서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외모를 가다듬고 옷차림에 신경 쓰는 건 고상한 유학자가 할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허생전’에서 살림에 무심한 허생의 모습을 “실티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는 식으로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말 그러했을까.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3일 출간된 ‘조선 사대부가의 살림살이’라는 연구서에서 이런 고정 관념을 깼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유학자들은 결코 옷차림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유학자의 출발점은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기(修己)다. 옷을 바르게 입어 경건함과 공손함, 단정함과 엄숙함을 드러내려 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유학자로서의 삶은 ‘라이프 스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철학자야 말로 제일 가는 스타일리스트다.

이는 꾸밈으로 나타난다. 상투를 가마 주변을 면도한 뒤 5~8㎝ 정도의 길이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마에 두르는 망건은 성형시술이 없던 시절 ‘피부 리프팅’ 기능도 했다. 피부를 최대한 당겨서 꽉 조여 매면 얼굴이 팽팽해지면서 젊어 보이는 효과를 냈다. 이 때문에 너무 꽉 조여 매다 멍이 들거나 망건을 벗다 피가 나는 경우까지 있었다. 머리에 쓰는 갓, 목에 감는 패영 등 신경 써야 할 다른 소소한 것들도 적지 않았다.

조선왕조 같은 농업사회에서 옷을 잘 차려 입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옷감을 장만하는 것에서부터 옷을 만들고 잘 관리하고, 또 자신에게 잘 어울리게 입는 과정 자체가 결국 살림살이 문제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퇴계 이황은 아들에게 “아비인 나도 평생 그 일(살림살이)을 비록 서툴게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전혀 하지 않을 수야 있었겠느냐”며 살림살이에 신경 쓸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보냈다. 성호 이익도 학문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생활대책을 반드시 강구해야 한다 주장하면서 살림살이를 잘 한 조카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도 아들에게 뽕나무 농사를 권했다. 환금성이 좋은 작물이어서 장사치처럼 살지 않아도 되면서 동시에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안정적인 생활기반을 만들어준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풍석 서유구는 세탁법을 기록해두기도 했다. ‘임원십육지’의 ‘복식지구’에서 서유구는 가죽이나 모직물, 양피 등 다양한 소재의 의류나 망건 등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자세히 기록해뒀다. ‘미암일기’로 널리 알려진 문신 유희춘 역시 관리들의 저마다의 복장을 마련하는 방법과 관리법에 대한 얘기들을 남겨뒀다.

이 연구원은 “사대부 남성들은 글공부나 하고 살림살이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편견”이라면서 “실제 사대부가 남성들의 문집을 보면 살림살이에 상당히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가져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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