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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깐깐한 유럽 수출길 도와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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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깐깐한 유럽 수출길 도와드려요"

입력
2014.10.1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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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6월부터 혼합물도 규제 포함, 정밀하게 분석해 메뉴얼 제공

국내 수출 업체들에 큰 도움

삼성정밀화학은 공동기술센터 설립, 자체 개발 고분자 물질 규제 대응

국가기관ㆍ기업 협력모델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 삼성정밀화학은 최근 이곳에 기술센터를 세우고 과학자들과 함께 유럽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KIST 유럽연구소 제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 삼성정밀화학은 최근 이곳에 기술센터를 세우고 과학자들과 함께 유럽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KIST 유럽연구소 제공

#1.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수출되는 국산 자동차 부품을 현지에서 만들어 납품하는 대기업 계열사 체코 법인 H사가 최근 발칵 뒤집혔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정부가 갑작스럽게 실사를 나와 부품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증명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면 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H사엔 현지 규제에 대응할만한 전문인력이 없었다.

#2. 국내에서 원자재를 공급받아 혼합물을 만들어 덴마크 제조업체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유럽시장 진출을 모색하던 중소기업 D사는 수입사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로 사업성사 직전에 거래가 취소될 위기에 놓였다. 수입사 측이 유럽의 화학물질 규제를 이행해야 거래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제품이 세관에 묶여 통관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공들인 유럽 수출이 성사를 눈앞에 두고 타국에서 낯선 장벽에 맞닥뜨린 것이다. 장벽은 바로 유럽신화학물질관리규정(REACH)이다. 2007년 발효 이후 단일 화학물질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던 이 규제가 2015년 6월부터는 혼합물(단일 화학물질을 두 가지 이상 섞은 물질)까지 확대된다. 자동차 부품이나 각종 플라스틱 등 산업계에서 거래되는 화학물질은 단일물질보다 혼합물 형태가 훨씬 많다. REACH의 영향력이 국내 화학물질 수출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거라고 예상되는 이유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 과학자들은 화학물질 위해성 평가 기술을 연구하며 유럽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을 돕고 있다. KIST 유럽연구소 제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 과학자들은 화학물질 위해성 평가 기술을 연구하며 유럽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을 돕고 있다. KIST 유럽연구소 제공

하지만 개별 기업이 유럽의 까다로운 환경규제까지 면밀히 검토하기가 쉽지 않다. 전전긍긍하는 업계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독일현지법인인 KIST 유럽연구소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REACH 대응 전략을 연구하는 이곳 10여명의 과학자들 덕분에 H사는 관련 대응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고, D사는 제품이 통관돼 스페인과 폴란드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REACH에 따르면 유럽 안에서 한 해에 1톤 이상 제조 또는 수입되는 화학물질은 분량과 위해성 등을 등록, 평가, 허가 받아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자사의 화학물질이 이 규제에 해당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지 등이다. 워낙 전문 분야인 데다 언어 장벽도 있어 유럽 규제당국과 소통이 쉽지 않다.

화학물질 중간가공사인 D사는 수출하려는 혼합물이 REACH의 등록 대상인지조차 몰랐다. 수입사의 규제 이행 요구에 당황한 D사의 대리인 자격으로 KIST는 중간가공사 역시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수입사에 알릴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D사가 안전성 근거자료를 제조사로부터 제공받아 수입사에 제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H사는 REACH에 대해 파악은 했지만, 부품을 조성하는 화학물질의 독성 자료를 자체적으로 완비하지 못한 상황이라 KIST가 보완해주고 있다.

REACH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기업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 REACH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기업은 이미지가 실추돼 향후 사업에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생산 중인 화학제품의 절반 가까이를 유럽에 수출하는 삼성정밀화학은 지난달 KIST 유럽연구소에 공동기술센터를 설립했다. 자체 개발한 고분자물질을 규제에 대응해 원활하게 수출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이 물질은 시멘트, 석고, 염료 등으로 완제품을 만들 때 접착제 역할을 한다. 장균우 삼성정밀화학 그린소재마케팅팀장은 “REACH에 맞게 위해성은 최대한 낮추면서 경제성은 높일 수 있는 방법을 KIST와 함께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에는 KIST가 개발한 ‘혼합물 위해성 평가 프로그램’도 사용된다. 김상헌 KIST 유럽연구소 환경바이오그룹장은 “수백 쪽에 달하는 유럽 환경규제 기술지침서와 기존에 등록된 단일 화학물질 정보 등을 바탕으로 기업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라며 “이달 말 모든 기업에게 개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동기술센터가 자리 잡으면 글로벌 환경규제에 대응하는 국가기관과 기업 간 좋은 협력모델이 될 전망이다. 장 팀장은 “유럽 규제 대응에 별도 투자가 어려운 기업에게는 과학자들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장기적으로 적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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