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癌도 이겼는데… 금슬 좋던 40대 부부, 삼남매 두고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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癌도 이겼는데… 금슬 좋던 40대 부부, 삼남매 두고 떠나

입력
2014.10.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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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회사-서울 대학원 오간 만학도, 자녀들 中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도

사회 초년생 故 홍모씨 어제 발인, 어머니 "내 아들…" 영정 앞 오열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희생자 홍모씨의 발인식이 19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량이 서울추모공원으로 가기 위해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희생자 홍모씨의 발인식이 19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량이 서울추모공원으로 가기 위해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다. 불과 이틀 전 아침, 출근한다며 집을 나선 아들은 차디찬 시신이 돼 돌아왔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해 돈 쓸 데도 많았을 텐데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어머니에게 건네던 그런 아들이었다. 회사 일로 피곤해도 택시 한 번 타지 않고 지하철만 타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었다.

아들 영정이 나오자 어머니는 온 힘을 짜내 다가가려다 이내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 울어 말라버린 어머니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보다 먼저 가면 어떡하니 내 아들, OO아, OO아!” 아들의 나이 고작 스물아홉이었다.

17일 판교테크노밸리 공연장 인근 환풍구 추락사고로 숨진 홍모씨의 발인식이 19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 사고로 숨진 16명 가운데 처음으로 열린 발인이었다. 홍씨의 친인척과 회사 동료 등 4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지켜봤다.

회사 동료 등에 따르면 홍씨는 올해 5월 판교테크노밸리의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 입사했다. 근무시간이 유연한 IT회사라 사고 당일 업무를 보다 잠시 머리를 식히러 동료 네 명과 행사장을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30대 여성은 홍씨 옆에서 공연을 관람하다 함께 추락했고 나머지 동료들은 환풍구에서 공연을 보지 않아 화를 면했다.

또 암 투병 중 산책을 나왔다가 변을 당한 부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아내 권복녀(45)씨는 최근 암 수술을 받고 차도가 있자 남편 정연태(47)씨와 산책을 나섰다가 공연을 보게 됐다. 정씨는 아내의 병수발에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고, 슬하의 삼남매에게도 자상한 아버지였다. 정씨 부부는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금슬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의 여동생은 “아이들이 너무 놀라 울지도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하고 있다”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눈물지었다.

분당의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던 희생자 A씨는 중국으로 아내와 고교생, 중학생 자녀 두 명을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였다. A씨의 매제는 “자식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년 2월 아이들이 돌아오면 함께 살려고 두 달 전 새 전셋집도 마련했는데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며 가슴을 쳤다.

1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 유스페이스 앞 환풍구 붕괴 사고현장에 피해자를 위한 국화꽃이 놓여 있다. 뉴시스
1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 유스페이스 앞 환풍구 붕괴 사고현장에 피해자를 위한 국화꽃이 놓여 있다. 뉴시스

희생자 중에는 판교에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하던 만학도도 있었다. 이모(39)씨는 2011년부터 부동산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경력을 쌓았다. 학업에 열의를 보이던 이씨는 최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에 진학해 부동산학을 공부하며 전문가의 꿈을 키웠다. 성남 중앙병원에 차려진 이씨의 빈소를 찾은 전 직장 동료 정모(36)씨는 “허허벌판에서 시작해 이제 겨우 자리를 잡나 싶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실 줄 몰랐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분이었는데 안타깝다”며 고개를 떨궜다.

한편 사고 당일 환풍구에 대해 경고 방송을 했다는 주최측 주장을 반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숨진 홍씨와 사고 현장에 동행했던 동료들은 “뉴스에 나온 것처럼 사회자가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여러 차례 주의를 준 적 없다”며 “사회자가 공연 전 환풍구 앞 난간에 앉은 초등학생들에게 ‘내려오라’고 한 번 말한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2년 넘도록 회사를 다니면서 사고가 난 환풍구가 그렇게 깊은지 몰랐다. 주최측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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