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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는 이름의 허구

입력
2014.07.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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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제물로 국가를 세운 자의 삶 역시 흔히 비극으로 끝난다. 조선의 기틀을 구축한 정도전의 운명도 그랬다. 그를 제거한 건 태종 이방원이었다. 국가를 만들고 지킨 그들에게 그러면 국민은 뭐였을까. 사진은 KBS사극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할을 열연한 배우 조재현. KBS 제공
피를 제물로 국가를 세운 자의 삶 역시 흔히 비극으로 끝난다. 조선의 기틀을 구축한 정도전의 운명도 그랬다. 그를 제거한 건 태종 이방원이었다. 국가를 만들고 지킨 그들에게 그러면 국민은 뭐였을까. 사진은 KBS사극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할을 열연한 배우 조재현. KBS 제공

국가는 당신(불특정 다수) 따위 모른다. 희생만 강요할 뿐.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간파다. 적은 타국이 아니라 자국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건국은 찬란하니 죄업을 덮어주라고?

“대개 장수에 고통 없는 죽음을 호상(好喪)이라고 하지만 하도 사고가 많다 보니 생로병사 차원의 죽음만 맞아도 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 징집되어 생판 모르는 이들을 죽여야 했던 병사들은 의사자가 아니라 ‘호국영령’ 혹은 ‘×죽음’으로 불린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은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뜻이다. (…) 민족이 국가를 세운 것이 아니다. 국가를 만들기 위해 민족이 발명된 것이다. 무명용사는 구체적인 어떤 사람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상상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이다. 그래서 의사자는 그 희생으로 살아남은 특정 개인에 의해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지만, 무명용사와 전사자는 국립묘지라는 집단 기억의 장소와 날(현충일)이 정해져 있다. 모르는 사람, 즉 국가라는 상징적 정체(政體)를 위해 죽었기 때문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상상의 공동체는 완성된 적이 없다. 미완은 이 공동체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국가 건설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국가안보를 핑계로 국민의 안전을 짓밟는 것은 불법적 통치 행위다. (…) 한국 사회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 전쟁터라 의사자(body)와 호국영령(ghost)이 구별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것은 전혀 성격이 다른 죽음이기 때문이다. (…) 우리 사회는 국민 보호라는 국가 기능이 없다 보니 타인을 위한 정의가 곧 국가를 위한 일처럼 여겨진다.”

-무명용사의 묘지(한겨레 ‘정희진의 어떤 메모’ㆍ여성학 강사) ☞ 전문 보기

“나라를 만드는 자의 삶은 비극으로 끝나기 일쑤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가는 건국의 도정(道程)에서 찬란한 업적과 죄악의 업(業)이 날카롭게 교차하기 때문이다. (…) 국민주권제가 이끄는 민주정치에서도 나라 만들기의 냉혹한 본질에는 큰 차이가 없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곤 하지만 ‘조직화된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가 국민의 피와 땀을 제물(祭物)로 요구하는 나라 형성의 기본 구도는 비슷하다. 국가의 폭력성에 전율하는 평화주의자들이 무정부주의나 국제주의에 심정적으로 기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폭력성과 무(無)도덕성이 짙게 깔려있는 국가의 근원을 통제하기 위한 현대적 장치가 정의로운 민주국가의 이념인 것이다. (…) 현대 세계사에 넘쳐나는 게 독재자들이지만 박정희처럼 나라 만들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은 거의 없다. 그런 박정희도 측근의 시해(弑害)로 역사 무대에서 퇴장당했다. (…)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박정희에 대항해 ‘나라를 지키는 자’를 자임한 인물 중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으뜸이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평생 사투(死鬪)를 벌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둘은 화해했다. (…) 건국과 산업화를 통한 나라 만들기가 선행하지 않았다면 지켜야 할 나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부재한 현대 국가는 지켜야 할 가치가 없다.”

-나라를 만드는 者와 지키는 者(7월 4일자 조선일보 기명 칼럼ㆍ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 전문 보기

역사는 현재와 과거 간 대화라 했다. 하릴없는 역사의 가변성은 우리에게 냉정을 요구한다. 얻어 맞은 과거는 현재 호신을 위해 의미 있다. 이해(利害)와 힘이 명분 앞인 게 현실이다.

“현재의 상황과 현재의 필요를 반영하며 끊임없이 다시 쓰는 게 역사다. 일본에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후 역사 왜곡 문제가 시도 때도 없이 도지는 게 동북아 상황이다. 중국의 최대 안보 관심사는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적극 호응하며 짜나가는 중국 저지선(沮止線) 형성에서 한국이 무슨 역할을 맡느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ㆍ중 관계사(關係史) 강의는 이런 동북아 상황과 한ㆍ미ㆍ일 사이의 가장 약한 고리를 더듬어 볼 중국의 안보적 필요를 감안하며 들어야 한다. 현상 타개(打開)를 위해 역사 문제의 힘을 빌려 오는 중국과 역사 문제의 무게에 눌려 현상 타개의 긴급성이 밀려나고 있는 한국의 차이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울의 중국 바람, 평양의 일본 바람(조선일보 기명 칼럼ㆍ강천석 논설고문) ☞ 전문 보기

“그동안 일본은 역사 문제로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왔다. 중국의 부상으로 요동치는 동북아 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으로선 주요 동맹국인 한일 양국의 협조가 절실하기에 일본이 역사 문제로 한국을 자극하지 말 것을 촉구해 왔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정리한 1993년 고노담화 수정을 반대해왔다. 이번 고노담화 검증은 이러한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아베 정부는 갈 길을 가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박근혜 정부는 지역 내 국가 간 상호신뢰 구축을 통하여 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야심 찬 ‘동북아 평화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실행해 보지도 못한 채 일본과의 역사전쟁에 묶여 있다. (…) 아베 정부는 고노담화 검증으로 역사 문제에 대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름대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생각할 것이며 한국 측 요구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현재의 긴장 관계를 감수하고서라도 지속적으로 역사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아니면 역사 문제와 다른 외교 안보 사안을 분리한 투트랙 전략으로 갈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고노담화 검증 이후 한국 정부의 선택은 무엇인가(동아일보 ‘동아광장’ㆍ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 전문 보기

혁신의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는 않을 거다. 교육 혁신은 더 그렇다. 교육의 정수가 체득에 있어서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기억한다. 참고 기다려야 한다. 조급하면 항상 같은 자리다.

“직접, 그건 인류사에서 수천 년간 내려오는 교육법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가령 아이에게 방 청소를 시켜 보세요. (…) 청소를 했다는데 방은 여전히 먼지투성이입니다. (…) 마음 급한 부모는 ‘됐어. 이리 줘.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라며 자신이 직접 해치웁니다. 다시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 ‘깨끗한 방’이라는 정답만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다르죠. 기다립니다. 깨끗한 방이 정답이 아니니까요. 방을 깨끗하게 치울 수 있는 아이의 힘이 정답입니다. 그 힘은 한 번에 길러지지 않습니다.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그걸 반복하며 아이는 청소기와 걸레, 그리고 먼지의 촉감과 성질을 조금씩 알아차리는 겁니다. 걸레를 빨고, 빗질을 하면서 사물을 접하고 이치를 터득하는 겁니다. 그게 아이의 근육이 됩니다.”

-내 삶의 채점 기준(중앙일보 ‘백성호의 현문우답’ㆍ문화스포츠부문 차장) ☞ 전문 보기

“이 나라에서는 교육의 목표가 명확하다. 명문대 입학이다. 그것은 진보적인 엄마든, 보수적인 엄마든, 중도적인 엄마든, 매한가지다. (…) 내 아이가 공동체의 선에 복무하는 시민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도 일단은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길 원한다. (…) 배추의 생장과정을 요약, 설명해주고 암기시키는 데는 몇 분이면 족하다. ‘압축교육’이다. 하지만 직접 배추를 키워보며 자연의 구조를 익히는 데는 일 년이 걸린다. 그 안에 시험문제가 나와버리면 아마도 틀릴 테지만, 이렇게 익힌 지식은 영원히 존재에 각인된다. 문제는 서서히 그러나 깊이 배우고 있는 이 ‘숙지의 시간’을 엄마들이 견뎌낼 수 있느냐이다. (…) ‘선생님은 내가 잘 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데, 엄마도 그럴 수 있어?’ 입주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혁신학교에 다니는 5학년짜리 아이의 말이다. 일단 보장된 혁신학교의 수명은 4년. 우리는 이 4년이나마 기다릴 수 있을까. 명문대를 가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세상에 1㎝라도 다가가기 위해 힘을 모으는, 혁신학교에 걸맞은 ‘혁신엄마’들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은 ‘혁신엄마’입니까?(6월 13일자 한국일보 ‘36.5°’ㆍ박선영 문화부 기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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