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평선] 카이사르의 비서

입력
2015.02.24 16:15
0 0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은 21회 보고를 받았지만 모두 서면과 전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나 ‘불통’ 비판을 받았다. 대면보고를 기피하고 주로 서면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니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새해 기자회견에서도 박 대통령은“대면보고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면보고보다 그냥 전화 한 통으로 빨리 하는 것이 더 편리할 때가 있어요”라고 한 뒤 장관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 서면보고는 일방적인 소통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 서면보고를 위주로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비서실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비서실에서 보고서를 취사선택해서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업무지시도 비서실에서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자연적으로 비서실의 위상이 높아지고 비서실장이 2인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서실장이 ‘왕실장’등으로 불리게 되는 이유겠다.‘문고리 3인방’이 득세할 수 있었던 것도 박 대통령이 서면보고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 세계문화전문가 조승연의 저서 비즈니스 인문학에 따르면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암살 계획에 대한 보고서를 보지 못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승전을 거듭하며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원로원 의원들이 카이사르 암살계획을 꾸민 뒤 비서를 고용해 비밀업무를 맡겼다. 하지만 이 비서는 오히려 카이사르 진영에 암살계획과 관련된 보고서를 넘겼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너무 바빠 이 보고서를 미처 보지 못했고, 비서도 카이사르가 암살을 당한 뒤에야 보고서를 개봉해보고는 땅을 쳤다는 것이다.

▦ 비서(秘書)의 비(秘)는 숨긴다는 의미다. 영어로 비서(Secretary)도 비밀(Secret)을 지키는 사람을 의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보의 기밀 유지가 비서의 최고 미덕이라는 뜻이다. 정보처리 능력에 따라 모시는 주군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사의를 표명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기밀을 지키는 비서의 ‘제1 행동수칙’을 따른 것이나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다. 후임 비서실장에게는 좀 더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이유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