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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허용은 결혼제도를 더욱 강화한다”

입력
2016.03.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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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배지트 교수가 12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 강연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리 배지트 교수가 12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 강연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경제학자이시기도 하니까 좀 적극적인 얘기를 해주실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성결혼이 다른 누구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런 거 말고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확인된다든지, 그런 것은 없을까요?”

좀 더 화끈한(?) 연구결과가 없느냐는 질문이다. 태연자약한 답이 나왔다. “동성 결혼 허용으로 결혼식 비용 지출이 늘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내용 같은 것은 있습니다.” 하기야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게 동성결혼이다. ‘동성애포비아’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줄어든 데 따른 간접 이익 이외에 생각하지도 못한 별도의 엄청난 경제적 이득이 생겨날 리는 없다.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 강당에서 12일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민음사)의 저자 리 배지트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의 강연회가 열렸다. 배지트 교수는 레즈비언이자 동성결혼을 한 사람이다.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오다 이 문제를 경제학에다 연결 지은 첫 번째 학자로 꼽힌다.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는 동성결혼의 도덕성이 어쩌고 하는 논쟁은 이미 너무 많으니, 대신 동성결혼을 허용한 나라들에서 어떤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는지 실제로 확인해보자고 주장하는 책이다.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순간, 온 사회의 도덕이 문란해지고 결혼은 안 하려 들면서 출산율이 뚝 떨어질 것이며 문명이 파멸로 치닫을 거라는 데 그 주장들이 과연 근거가 있는지 따져보자는 얘기다.

1989년 덴마크, 199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동성결혼을 인정한 국가는 20개국이다. 이들 나라에서 출산율이나 결혼율이 폭락했다거나, 강력범죄가 늘었다거나, 문화수준이 크게 떨어졌다거나 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발견될 리가 없다. 배지트 교수는 ‘동성이 결혼했다, 그러나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다’는 제목이 뽑힌 미국 보스턴 지역 일간지를 보여주면서 “동성결혼 허용으로 사회적 압력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면서 동성애자들의 의료비 지출이 줄어드는 등 전반적인 정상화 효과가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 문제는 우리에게도 슬슬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은 동성결혼에 대해 주 별로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해오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이 연방 차원에서 허용 결정을 내렸다. 이어 지난 7일에는 동성부부의 양육권까지 인정했다. 국내에도 사례가 있다. 영화인 김조광수는 2013년 동성결혼식을 공개적으로 치른 뒤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넣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결혼에 대해서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날 사회자로 나선 김조광수는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때엔 어렵고 막막했는데 크게 위로 받은 책”이라고 말했다.

온갖 자료를 검토한 결과 동성결혼이 사회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아니 바꾸긴 하되 기존의 결혼제도나 사회제도를 파탄 내는 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더 강화하는 쪽으로 바꾼다.

배지트 교수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원래 성 소수자 운동에 기운 사람들은 낡은 가부장제에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성애자들의 결혼 자체가 바뀌고 있다. 태어난 이상 무조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상호 존중’ ‘이해와 인내’ ‘한 배우자에 대한 충실함’ 등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또 하나는 동성애에 대해 완화된 시선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예 대놓고 비난하기보다는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요즘은 동성애자들 스스로 결혼을 택한다. 배지트 교수는 “동성 간 결합을 파트너십으로 할 것이냐 결혼으로 할 것이냐 선택하게 했을 때 네덜란드 동성커플의 92%, 미국 일리노이주 동성커플의 99.4%, 네바다주 동성커플의 99%가 결혼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유는 “파트너십 등록은 사람간 관계를 업무관계나 정치적 협상처럼 취급하는 느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상대와의 감정적 결합에 더 효과적이다” “친척 등으로부터 우리 관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데 더 크게 도움이 된다”는 등의 대답이 나왔다. 왜 또 굳이 결혼까지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인 셈이다.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배지트 교수는 동성결혼은 이성결혼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하면서 강연을 끝냈다.

이날 강연이 끝난 뒤 다정하게 손 잡고 행사장을 빠져 나오던 두 여성이 “결혼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결혼은 싫다”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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