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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나치에 끌려가도 나는 티타임… 진정한 자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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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나치에 끌려가도 나는 티타임… 진정한 자유일까

입력
2016.10.0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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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세계적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몬 드 보부아르. 세계적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모든 사람은 혼자다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ㆍ박정자 옮김

꾸리에 발행ㆍ176쪽ㆍ1만6,000원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ㆍ한길석 옮김

꾸리에 발행ㆍ248쪽ㆍ1만8,000원

충족된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다. 욕망은 무한 갱신된다. 이 여자를 탐했으나 갖게 되자 시들어지고, 저 여자를 다시 탐하지만 사랑을 얻고 나면 떠나야만 하는 돈 후안의 고독. 이것이 인간이 내던져진 존재의 근본 조건이다. 그렇다면 충일한 내면의 행복은 언제 도래하는가. 다들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진리, “도래하지 않는다”가 답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철학 에세이 ‘모든 사람은 혼자다’는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어떤 희망이 허용되는 것일까?”를 묻는 책이다.

‘제2의 성’으로 전 세계 페미니즘의 대모가 된 보부아르가 한국사회를 강타한 페미니즘의 도도한 물결에 실려 한국 출판계의 빈번한 호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사르트르와 계약결혼 한 페미니스트로서가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의 돌올한 한 경지이자 사르트르 너머의 철학을 보여주는 실존주의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존재의 기투와 초월성과 의식과 무(無)와 자유를 논하는 정통 철학 에세이다.

보부아르는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크가 전하는 고대 희랍의 왕 피뤼스와 그 신하 시네아스 이야기를 배치해 질문을 던진다. 정벌 계획을 세운 퓌리스가 “우선 그리스를 정복하자”고 말했더니 시네아스가 “그 다음에는?” 하고 묻는다. “아프리카를 손에 넣자”고 하자 “그 다음에는?” 묻고, “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아라비아를 침략하자”고 하니 또 “그 다음에는?” 묻는다. 끝없는 ‘그 다음에는?’에 지친 피뤼스가 ‘휴식하기로 하자’고 답하자 후대의 현자로 떠받들어지는 시네아스가 말한다. “왜, 지금 당장 휴식하지 않고?” 무한한 욕망의 노예로 미래를 기약하기만 하며 유예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운동 없는 정지 상태의 초월적 삶을 사는 게 낫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평생을 살다간 데이비드 소로는 그 신비화의 정점이다.

하지만 보부아르에게 지금 당장 휴식하자는 시네아스의 제안은 도저한 허무주의이자 존재론적 저주다. 어차피 내려올 산 굳이 올라가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산을 오른다는 세계 속에서의 운동이,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가는 무상적 행동이 인간 고유의 존재양식이기 때문이다. 꿈꾸는 존재인 “인간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는 존재지만, 자유를 통해 가치와 목표를 수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뤼스의 후손들이 된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가 충분히 다루지 못한 실존주의 윤리학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하는 보부아르의 대표작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애매성의 윤리학’은 자유의 문제를 더 깊게 파고 들어간다.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고, 너도 자유로운 인간이다. 그런데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는 상충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각자 고립적 자유만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보부아르는 주체들 간의 자유가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애매성이라는 단어로 개념화한다. 나와 타자의 관계는 대립인 동시에 화해이며, 자유인 동시에 억압이다. 그러므로 자유란 서로의, 우리의, 상호주체적인 자유이며, 서로에게 더 좋은 삶을 구현하기 위해 서로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참여의 윤리학이 된다. 이 역동적 교차가 자유이며, 이 자유가 촉구하는 것이 이른바 상호주체적 윤리학이다.

물론 우리는 옆집의 이웃이 나치에게 끌려가더라도 나는 우아한 애프터눈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외면은 나의 대자적 의식으로부터 힐난을 받으며,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경멸 당하고 고립된다. 보부아르의 상호주체적 윤리학에 따르면, 이런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보부아르는 ‘모든 사람은 혼자다’의 서문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죽은 뒤 홍수가 오건 말건” 따위를 예사로 말하는가 하면, 샤를마뉴 대제는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도 공격해 오는 노르만족의 배를 보며 울었다”고 썼다. 나의 실존은 나의 당대를 넘어서는 것이며, 우리가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는 ‘자유를 달라’는 요구는 공동체의 자유라는 의미의 자장 내에서만 유효하다. 진공상태에서 홀로 진동하는 그런 자유는 없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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