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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여성암병원' 기치 내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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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여성암병원' 기치 내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앞장

입력
2014.12.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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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위암 분야 손꼽히는 권위자 매년 60개국 4000명이 병원 찾아

"환자는 의사와 직접 소통을 원해" 중국어·일본어 등 7개 국어 구사

백남선 이대여성암병원장은 "지금은 그 어떤 병원도 건강보험 수가만으론 생존할 수 없다"며 "해외시장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화여대의료원 제공
백남선 이대여성암병원장은 "지금은 그 어떤 병원도 건강보험 수가만으론 생존할 수 없다"며 "해외시장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화여대의료원 제공
2012년 5월 아부다비 DAMAN사와 MOU 체결.
2012년 5월 아부다비 DAMAN사와 MOU 체결.
2012년 7월 카자흐스탄 oskemen암센터와 M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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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서울 명동 거리에서 중국인, 일본인을 만나도 아무렇지 않듯, 서울시내 병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만나도 더는 낯설지 않다. 모든 병원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중국 미국 몽골 러시아 등 국적을 망라한 적지 않은 수의 외국인들이 한국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실에서 긴 줄을 선다. 한국 의술의 개가이든, 한류 바람을 탄 것이든, 기분좋은 변화임엔 분명하다.

최근 들어 국내 대학병원들이 하나 둘씩 외국인 환자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백남선(67) 이대여성암병원장의 글로벌 행보가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사실 백 병원장만큼 외국을 자주 드나드는 의료계 인사도 드물다. 그는 두 달에 한 번꼴로 해외에 나간다. 자신이 이끄는 이대여성암병원에 외국인 환자를 데려오기 위해서다. 중국 몽골 러시아 UAE 등 전 세계를 휘젓는다. 그의 여행자카드에 100만 마일리지가 쌓여 있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글로벌 여성암병원’ 백 병원장이 지난 2011년 5월, 원자력병원장, 건국대병원장을 거쳐 이대여성암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지난 18일 서울 양천구 이대여성암병원 병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글로벌 암병원의 기치를 든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지금은 그 어떤 병원도 건강보험 수가 만으론 생존할 수 없다. 해외시장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잦은 외유(外遊)는 암병원의 활로찾기라는 말이다. 그의 귀로(歸路)에는 외국인 70~80명이 뒤따른다. 그에게서 유방암 등 암 치료를 받으려는 각국의 여성 환자들이다.

현재 해마다 세계 60여 개국에서 4,000명의 암 환자들이 유방암 자궁암 난소암 갑상선암 등을 치료 받기 위해 이대여성암병원을 찾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이 암병원의 여성암 수술건수는 개원 이후 3.7배로 늘었고, 유방암ㆍ갑상선암의 증가율은 5배가 넘는다. 백 병원장은 이대여성암병원이 개원 5년 밖에 안됐지만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신 있게 데이터를 내놓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유방암 5년생존율은 91%로 세계 톱이다. 우리 암병원은 유방 보존수술 비율이 75%에 이른다. 다른 데서라면 유방을 다 잘라야 하는데도 수술전 화학요법으로 유방 보존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고 예를 들었다.

백 병원장은 유방암ㆍ위암 분야 세계 100대 의사로 손꼽히는 권위자다. 위암수술 2,500례ㆍ유방암 수술 4,500례 기록을 가졌다. 1986년 유방보존 수술법을 국내 최초로 시행해 종양성형술(oncoplastic surgery)의 새 장(章)을 열었고, 역류성식도염 발생을 줄이도록 고안된 그의 위 전절제술에는 ‘Paik's procedure’(백남선 위암 수술법)란 이름이 붙었다. 그가 아내의 위암 수술을 직접 집도한 것은 의료계의 유명한 일화다. 강의와 수술 시연을 해달라는 외국 유수 병원들의 러브콜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는 “유방, 위는 물론 간 콩팥 췌장 직장 등 뱃속 수술이라면 지금도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다. 의술에서도 창조적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선배 따라하기 하면 밥 세 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선배를 극복하려면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데, 뛰어난 의술 뿐 아니라 소통과 외국어 구사력이 아주 중요하다고 백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의술이 뛰어나고, 치료비도 값싸고, 여기에다 랭귀지 파워(language powerㆍ외국어 능력)까지 갖추면서 비로소 외국인 환자를 불러 모을 여건을 완비하게 됐다”고 했다.

백 병원장은 7개 외국어에 능통하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현재 몽골어, 러시아어, 아랍어를 배우고 있다. 외국어 배우기는 재즈 부르기, 시 읽기, 골프와 더불어 그의 4대 취미. 그는 “환자와 믿음을 쌓는데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 아무리 유능한 통역이 있더라도 환자들은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와 직접 소통하고 싶어한다. 엊그제도 입원 중인 UAE 환자에게 아랍어로 몇 마디 건넸더니 깜짝 놀라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중 중요한 대목에서는 유창한 영어로 답하며 명불허전임을 입증해 보였다.

백 병원장은 ‘노래하는 병원장’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는 의료계나 병원 행사, 회식 자리 등에서 미국이 전설적 재즈싱어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내 마음(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을 중후한 목소리로 멋들어지게 뽑아 좌중을 휘어잡곤 한다. 그의 유별난 재즈 사랑은 긍정의 힘에 대한 오랜 믿음과 맞닿아 있다. 늘 ‘현재’에 충실하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낙천적 삶의 태도를 지닌 것. 그가 자주 하는 말 중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라틴어 어구가 있다. 옛 로마 서정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를 인용한 것으로, ‘현재를 잡아라’ 또는 ‘현재를 즐겨라’(영어로 seize the day)라는 뜻이다. 백 병원장은 인생살이에서도 환자 치료에서도 긍정의 힘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예전엔 의사가 기술만 있으면 됐지만 더는 아니다”라면서 “환자들이 나(의사)를 따르게 하고, 환자들도 하여금 ‘나도 완치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 과학(의술)만으론 환자와 친해지거나 희망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회진 중 만나는 환자들에게 ‘어디 살아요?’ ‘종교가 뭐예요?’ ‘노래 한 번 해봐요’ 등 질문을 수시로 던지면서 환자와 거리 좁히기를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 병원장은 외국인 환자 유치에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국내 특화지역에서 외국어를 쓰는 사람들에 한해 외국 의사의 진료를 허용토록 하는 정책과 관련, “그렇다면 우리 정부도 미국과 FTA협상에서 미국 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한해 우리 의사의 진료를 받도록 허용하라고 요구했어야 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송강섭기자 eric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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