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2세. 현대 정치사의 격변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역사의 산 증인으로 불렸던 김종필 전 총리가 23일 영면했다. ‘삼김(金)’으로 함께 불렸던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동교동계, 상도동계 같은 가신그룹은 없었지만 정치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만큼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은 종일 길게 이어졌다.
이날 낮 12시30분 서울 송파구 아산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가장 먼저 찾은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침통한 얼굴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정 의원은 “고인의 정치문하생으로서, 가슴이 너무 먹먹하다”며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걸출한 정치지도자,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에 공히 공헌했던 유일한 정치지도자였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이후 오후2시 30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필두로 이한동 전 국무총리, 김용채 전 국회의원, 한갑수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이긍규 전 국회의원, 김종학 전 국회의원, 이태섭 전 과학기술부 장관, 조부영 국회부의장 등 빈소를 찾는 원로 정치인들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며칠 전 댁으로 가 뵐 때만 해도 병원으로 옮기시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오늘 이렇게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다”며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김종필 전 총재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이어 “후배들이 김 전 총재의 족적을 거울 삼아 선진화와 통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된다고 믿는다. 정말 애석한 일이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역시 “순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어려운 고비마다 정치가 파탄나지 않게 하신 분”이라고 고인에 대해 평했다.
러시아에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문 대통령의 조화는 고인의 영정사진 왼쪽에 놓였고, 오른쪽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조화가 놓였다. 이 외에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일본 우정장관을 지낸 와타나베 히데오 일한협력위원회 회장대행,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정ㆍ재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로 장례식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으로 이뤄지며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발인은 27일로 청구동 자택에서 노제를 지낸 뒤 서초동에서 화장을 진행, 부여로 가는 동안 모교인 공주고등학교 교정에 들러 노제를 한 차례 더 지낼 것으로 보인다. 장지는 부인 박영옥 여사가 있는 충남 부여 가족묘원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와 딸 예리씨가 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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