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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11월 8일] '김우중 법' 반대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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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11월 8일] '김우중 법' 반대 사유

입력
2013.11.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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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5일 이른바 '김우중 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구체적으로는 '범죄수익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2건으로, 공무원 뇌물 범죄에 대한 추징의 실효성을 높인 '전두환 법'을 기업인 등 일반인에게까지 넓히려는 취지다.

지난 7월에 개정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은 제3자라도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불법재산 및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에 대하서는' 추징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형법 78조의 3년 시효를 10년으로 늘렸다. 애초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ㆍ양도 재산 추징이 주된 목적이었고, 실제로 법 개정 이후 그 절차가 본격화했다. 정부가 범죄수익 규제ㆍ처벌법 개정에 나선 것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비난 여론과 무관하지 않다.

솔직히 전두환 법에 대해서도 의문을 느꼈다. 거액의 불법자금을 긁어 모아 많은 부분을 자식에게 넘기고는 "27만원밖에 없다"고 버티던 그의 행태는 국민적 공분을 사고 남았다. 그러나 그가 밉다고 법의 상식적 체계를 흔들면서까지 분풀이를 하려는 세태가 얼빠져 보였다. 그렇게 추징한 자금이 세수 부족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작은 실익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정부가 세수 부족을 일거에 메워줄 증세는 물론이고 대기업에 대한 조세감면 축소 등을 팽개친 것과 비하면 너무 하찮은 효과다. 그보다는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해소라는 상징적 이익이 컸던 셈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부박(浮薄)한 게 민심이다. 나라를 온통 뒤흔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난 3월 발효 1주년이라는 검증의 좋은 기회를, 일부 전문가를 빼고는 무심히 넘긴 게 단적인 예다.

반면 개정 특례법이 해친 법적 안정의 장기적 악영향은 크다. 당장 최종 판결 당시 예상할 수 없었던 시효 연장이나 추징 범위 확대를 소급 적용한 것만도 헌법이 금한 소급 입법의 한계선을 건드렸다. 특례법이라는 명칭이 예정한 '특별한 사정'도 자꾸 쌓이면 금세 특별한 느낌이 사라진다. 대신 어떤 법이든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 소급 적용하면 그만이라는 국민의 왜곡된 법 인식만 웃자란다.

가변적 민심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초래된 이런 법적 불안정이 과연 불가피했는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을 추징에 앞서 빼돌린 것은 채권자인 국가가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해행위에 해당해서, 제대로 찾아내어 회복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준비돼 있었다. 그 절차가 번거롭고 까다롭다는 이유로 제대로 취소권을 행사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제쳐두고, 특례법 개정으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정치권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태만을 감싸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

'김우중 법'은 여기에 한결 심각한 의문이 덧붙는다. 김 전 회장을 비롯한 구 대우그룹 임원들에 법원이 부과한 추징금은 17조원이 넘는다. 김 전 회장과 주변 임원들이 이런 거액을 '해먹은 모양'이라는 일반적 오해와 '김 전 회장이 베트남에서 호화 생활을 하며 아들 소유 골프장에서 황제골프를 즐긴다'는 등의 악의적 비방을 빼고 나면 국민이 김 전 회장에 분노를 표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17조원의 추징금은 외국환관리법 위반 금액을 단순 합산한 것일 뿐이다. 경찰의 도박판 판돈 계산처럼 외환관리법의 신고ㆍ보고 절차를 빠뜨린 해외차입금 리볼빙 거래와 해외 현지에 투자한 수출대금, 해외운용자금 등 차입거래액을 합쳤을 뿐 상환액은 빼지 않았다. 최종 '위반 금액' 3조4,700억 원 또한 기업의 '불법자금' 규모일 뿐, 김 전 회장이나 임원들이 개인적으로 꿀꺽한 돈이 아니다.

실상이 이런데 국회마저 오해와 비방에 근거한 대중정서를 좇아 '김우중 법'을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대중영합은 이제 그만 끊어내야 한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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