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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가족은 저출산의 해결책이 아니다

입력
2015.07.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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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봐야 한다고들 하지만, 아등바등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손 놓고 앉아있는 거보다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 것이 세상일인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마찬가지로 저출산이 한국사회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큰 문제라며 도입되는 여러 저출산대책이 의도한 대로 출산율을 높이기는커녕, 그 자체로 더 큰 사회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최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3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공동체의 회복을 도모하겠다는 것 역시 그대로 실행될 경우 해결책이 더 큰 사회문제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게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민망하게도 보도 기사 앞머리에서 저출산해결을 위해서는 보조금 지원 중심의 개별적·미시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하고 주거·고용·교육 등 출산과 양육이 어려운 사회적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내용을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곧 나올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이전의 대책보다 한결 포괄적인 접근을 한다더니 정말 그럴 모양이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진 사회적 구조 해결의 방안이 3세대 동거란다. 한국의 효 문화를 계승하여 저출산뿐만 아니라 고령화 문제까지 해결하는 실마리로 삼겠다니 잠시라도 기대를 했던 자신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대가족제도를 통해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의 문제는 일부에서 지적하듯이 단지 실효성이 있고 없고 문제만은 아니다. 일찍이 저출산을 국가적 위기로 보는 담론이 출산을 여성의 의무로 만들어 출산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차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저출산대책에 대해 대부분이 수긍할만한 긍정적 역할이 있었다면, 이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책임을 개인이나 개별 가정에 오롯이 지울 수는 없다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를 확산시켜 온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 다시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의 해결책을 가족에서 찾겠다는 발상은, 이제까지 보육과 노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애써온 정부 정책 자체를 뒤흔드는 도발이자 중대한 퇴행인 것이다.

사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이러저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현상에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황부총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한국사회에서 출산과 양육이 어려운 것은 주거·고용·교육과 같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문제들은 말 그대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서 출산을 할 사람들에게만 도움을 주겠다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더구나 좀 해보다가 별 효과 없다싶으면 금방 그만두거나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인구가 줄면 국가발전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며 출산을 독려하지만 사실 성장과 발전을 앞세우는 사고 자체가 지금의 아이 낳아 기르기 어려운 사회를 만든 근본 원인 아닌가.

그러고 보면 아이를 낳고 기를만한 세상에 요구되는 삶의 기본들은 우리사회의 지금 모습과 너무도 먼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는 일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 보장과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또 아이를 돌보는 게 전쟁이 되지 않을 만큼 노동시간이 너무 길지 않아야 할 것이며, 등굣길 아이의 안전 걱정 없는 동네에서 끝없는 이사를 걱정하지 않고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주거공간도 필요할 것이다. 그 뿐이랴. 다 길러놓은 자식을 하루아침에 어처구니 없이 잃는 사고가 거듭되는 사회, 학교에 보내고 나면 공부 걱정뿐 아니라 폭력과 왕따 걱정인 사회, 겨우 학교를 마친들 청년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회, 그렇게 해서 노년의 부모와 장성한 자녀가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올라갈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현재 한국사회에서 저출산을 가져오는 사회의 구조적 요인들 가운데서 가족에게 맡겨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거꾸로 아이에게는 당연히 돈 벌어오는 아버지와 보살필 어머니가 있다는 생각, 노인은 손자를 돌보면서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는 게 가능하며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복지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니 가족을 들고 나오는 저출산대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고 말도 꺼내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 사실 최고의 저출산대책은 출산율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드는 정치인 것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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