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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정치하려는 쇼? 민주당 공연 제의도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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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정치하려는 쇼? 민주당 공연 제의도 거절”

입력
2016.11.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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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환이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
가수 이승환이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

소속사 건물 하야 현수막 걸은건

로커로서 저항의식의 발로

“감히 딴따라가 정치 얘기냐”에

왜 안되는지 이유 되묻고 싶어

주변서 중립 지키라는 얘기 많지만

내 시선 공유할때 음악도 소통

보수적 집안에서 자랐지만

광우병 사태 이후 시국저항콘서트

블랙리스트 오르지 않았어도

방송사 고위 간부 “형은 못나와요”

뮤직비디오 ‘애원’ 작업 함께 한

차은택과 5~6년전 연락 끊어

‘카푸그라증후군’. 가까웠던 사람에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을 일컫는 말이다. 가수 이승환(51)이 어느 순간 낯설어졌다. 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발라드 왕자’는 ‘투사’가 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이 드러나자 이승환은 자신이 설립한 연예기획사 드림팩토리에 ‘박근혜 하야하라’는 현수막을 최근 걸어 관심을 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못해 창피해 요즘 더욱 분발하고 있다”는 그의 도발은 더 세졌다. 이승환은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서 히트곡 ‘덩크슛’을 부르기에 앞서 “(세월호 참사 당일)7시간 동안 관저에 계셨다고 하는데 오늘도 관저에 계시려나”라며 “거기(청와대)까지 들리도록 ‘하야하라 박근혜, 덩크슛’을 선보이겠다”며 열변을 토했다.

“어제(17일)도 2~3시간 밖에 못 잤어요.” 18일 오후 서울 강동구 드림팩토리에서 이승환을 만났다. 현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국정농단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곡 ‘길가에 버려지다’ 마무리 작업 때문이다. 이승환은 이날 윤도현 등 30여 명의 음악인이 참여한 ‘길가에 버려지다’ 파트2를 공개했다. 지난 11일 이효리 전인권과 함께 부른 ‘길가에 버려지다’ 파트1을 낸 뒤 일주일 여 만이다. 21일에는 두 곡을 무료로 음원사이트에 공개한다. 그간 인터뷰를 극구 고사하던 이승환이 한국일보와 마주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무료 공연부터 세월호 참사 추모 콘서트까지. ‘박근혜 저격수’로 나선 듯한 이승환은 향후 연예 활동에 미칠 수도 있을 악영향에 대해 “돈은 상관 없다”며 의기를 보였다. “공연 보다 나라가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며 각종 이권에 개입해 수사를 받고 있는 차은택 CF 감독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대쪽같은 모습이었지만, ‘악동’ 같은 입담은 여전했다. 이승환은 “내 인생의 1번은 음악이 아닌 연애”라고 했다. 자신을 ‘새벽 고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아침에 성욕을 참기 힘들어하는 남자 고등학생을 빗댄 것이다. “동영상요? 4테라바이트에서 지금은 7테라 바이트로 늘었어요, 하하하.” 다음은 일문일답.

-’길가에 버려지다’를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친한 동생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규호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너무 열 받아서 쓴 곡이라면서 곡 하나를 보내줬다. 들어봤더니 가사가 정말 좋았고, 같이 프로듀싱하게 됐다. 2주 전 일이다. 우리 둘만 부르면 곡의 확장성이 떨어질 것 같아 이효리한테 연락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솔직히 이 곡 참여해 달라고 다른 가수들에게 부탁했을 때 많이 ‘까였다’. 날 ‘좌빨’이라 생각해 소속사들에서 불편해하더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추모곡을 냈다. 사회적 이슈를 담은 음악을 꾸준히 내는 이유가 있나?

“음악에 삶을 녹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한 곡을 만들게 됐다. 음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이기도 하다.”

-’박근혜 하야하라’는 현수막을 만들어 소속사 건물에 걸어 놀란 사람이 많았다.

“류승완 감독과 (방송인)김제동, (웹툰작가)강풀과 ‘차카게 살자’란 모임이 있다. 이번 일을 지켜보며 ‘현수막이라도 걸어볼까’라고 장난스럽게 주고 받은 말에서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되돌이켜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분노하며 깬 것 같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세월호 문제 등을 지켜보며 늘 분노에 차 있었다. 현수막을 건 것은 저항의식의 발로였다. 로커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현수막을 걸고 나선)내가 살아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연예인의 정치적인 발언을 못마땅해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연예인을 폄하하는 ‘딴따라’란 말이 싫다. 내가 ‘딴따라’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감히 ‘딴따라’가 정치 얘기를 한다는 시선은 지극히 계급적이다. 내 직업에 자부심을 느낀다.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 성취도 이뤘다고 생각한다. 왜 연예인은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안 되는지 되묻고 싶다. 사회 현안에 대해 발언을 내게 된 데는 ‘어디 감히 ‘딴따라’가’라는 시선에 대한 반감도 깔려 있다.”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는 게 문제다. 연예 활동으로 폭 넓은 팬 층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안 그래도 ‘퇴물이 인기 얻으려고 (발악)한다’는 말도 있더라. 안다. 내가 강성 이미지가 확고해져 당장 내달 발라드 공연(12월 2일부터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 등) 표가 잘 안 나간다. 손해 봐도 상관 없다. 지금 공연이 중요한가, 나라가 중요한가. 당연히 나라가 중요하지. 공연 스태프들과 돈독해 공연 티켓 판매가 잘 안 되면 (출장 비용 등을)좀 깎아주기도 한다(웃음).”

-연예 활동을 위해 소신을 감추면서 살 수도 있잖나.

“음악인으로서 항상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팬들이 내 시선을 공유할 때 음악도 진정으로 공유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중립을 지키라는 얘기도 듣는데, 그건 챙길 게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 난 돈 욕심도 없다. 데뷔하고 나서부터 내가 직접 앨범 만들고 매니지먼트사도 꾸려와 상처를 많이 받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의 ‘악플’에 상처도 잘 안 받는다(웃음).”

-‘이승환이 정치하려고 한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생각해 본 적 없다. 이제서야 말이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있을 때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공연 참여 제의가 왔는데 거절했다. 정치인과 엮이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내가 직접 홍익대 인근 클럽 알아보고 1,500만원 자비 들여 꾸린 거다.”

-‘천일 동안’을 불렀던 ‘발라드 왕자’였다. 현안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궁금하다.

“난 부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고, 학교는 서울 강남에서 다녔다. 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보수적이었다. 그런 내가 왜 변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부터였다. BBK 주가 조작 사건 등이 있었는데,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선에 나올 수 있을까라고 분노했던 것 같다.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사태’가 터졌고, 그 때부터 시국 관련 저항 콘서트에 서게 됐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였다. 윤도현 등이 나간다고 했는데, 경찰이 막을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고, 나라도 나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부를 노래가 없어 ‘천일 동안’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너무 정치적으로 비쳐지다 보니 동료 연예인들이 적지 않게 떠났을 것 같다.

“그만하라고 나무라는 사람이 많았다. 너무 싫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걸 지켜보면서 난 주류 음악인들과 많이 다르구나란 걸 알게 됐다. 그들이 백조라면 난 오리 같았다랄까. 난 연예인을 잘 모른다.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도 세 개 밖에 없다.”

이승환의 소속사 드림팩토리 건물에는 최근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드림팩토리 제공
이승환의 소속사 드림팩토리 건물에는 최근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드림팩토리 제공

-블랙리스트에 오르진 않았지만, 블랙리스트 같아 보인다. 방송 등 활동에 제약을 받은 적은 없나?

“고등학교 3년 후배가 한 지상파 방송사 고위 간부인데 ‘형은 못나와요’라고 하더라. 지난해 했던 얘긴데,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아래에서 올려도 위에서 커트되는 분위기랄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차은택 CF 감독이 구속됐다. 당신의 ‘애원’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조명 받은 사람이라, 이번 사건을 보며 많이 착잡했을 텐데.

“고등학교 후배다. 5~6년 전 연락을 끊었다. 연예계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한 제작자와 어울리는 게 너무 싫었다. 처음엔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라도 ‘지금이라도 자수하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연루된 사건이 한 둘이 아니더라. 까면 깔 수록 나오고. 지금은 조금의 연민도 없다.”

-쉰이 넘었는데, 여전히 동안으로 통한다. 이승환에게 ‘나이’를 먹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천명이 지났다. 하늘의 뜻까진 모르겠고, 적어도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나이를 먹는 건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늙지 않는 비결은.

“권위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꼰대’로 살지 말자가 모토다. 마음이 늙으면 몸이 늙는다. 젊은 친구들하고 어울리려 노력하고. 은둔형 외톨이라 집에서 인터넷 하는 걸 좋아한다. 요즘엔 넷플릭스로 드라마 보는 게 취미다. 담배는 안 하고, 술도 자제한다. 운동 꾸준히 하고. 홍삼 먹기 시작한 건 1년 전부터다. 토마토를 자주 먹는다.”

-1년에 공연을 40회 이상 한다. 많이도 하지만 최장 시간 공연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열성 팬들을 위한)‘빠데이’ 공연을 8시간27분 동안 했다. 77곡을 불렀다. 물론 나도 초조하다. 겁도 나고. 장시간 공연에 도전하는 이유는 나이 많은 음악인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편견을 깨고 싶어서다. 음악이 고루하고 공연이 힘 없을 거라는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 공연 문화를 선도해 음악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은 바람도 있다.”

-‘차카게 살자’란 모임도 만들고, 공연까지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차카게 사는 건’ 어떤 건가.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일이다. 요즘 권력자들 중에 ‘소시오패스’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나도 사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데, 많이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당신이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다. 언젠가부터 정의로우면 해코지를 당할 것 같은 세상이 됐잖나. 사회 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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