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하나 조이는 작업까지 촬영하며 3인1조 작업 세 번 확인
11일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에 자리 잡은 여의도 1.7배 면적(490만㎡)의 창춘궤도객차주식회사. 연간 1,500여대의 고속철과 2,000여대의 지하철, 500대의 일반 철도 객차가 생산되는 이 곳은 최근 합병으로 세계 최대 고속철 회사로 발돋움한 중국중처(中國中車ㆍCRRC)의 심장부다. 초대형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마지막 조립만 남은 미끈한 형태의 고속철 80여대가 도열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세 명이 한 조를 이뤄 작업을 하고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열차 하부의 나사 하나를 조이는 일을 세 명이 함께 했다. 첫 번째 직원은 나사를 돌린 뒤 연결 부위를 빨간 펜으로 표시했다. 두 번째 직원은 옆에서 캠코더를 든 채 이 과정을 모두 촬영한 뒤 작업이 잘 됐다는 녹음까지 했다. 세 번째 직원은 첫 번째 직원과 두 번째 직원이 각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지를 지켜본 뒤 작업과 점검을 모두 마쳤다는 확인 스티커를 나사 옆에 붙였다. 캠코더를 든 직원에게 왜 작업을 촬영하느냐고 묻자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책임 소재도 분명히 가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들 옆에서도 또 다른 ‘3인1조’가 나사를 조이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중국은 무려 세 명을 투입,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고속철 한 대를 만드는 데 거쳐야 하는 459개 공정이 모두 이런 식으로 확인과 점검, 다시 재확인의 과정을 거친다. 2011년7월 원저우(溫州) 고속철 사고로 40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중국 고속철은 속도보다 안전을 더 중시하고 있다. 철저한 품질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은 고속철에서도 인해전술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 공장의 직원은 1만8,000여명이나 되고, 중국중처 전체 직원 수는 17만명이 넘는다.
인해전술이 가능한 건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신입 직원들의 월급은 3,000위안(약 54만원) 정도. 더군다나 이곳 직원들은 추가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왕레이(王雷) 창춘공장 설계부 부장은 “원래는 하루 8시간 근무를 하도록 돼 있지만 통상 12시간 이상씩 일한다”며 “추가 근무수당을 받는 만큼 불평하는 이는 없다”고 밝혔다.
물론 인원 수와 근무 양으로만 승부를 거는 건 아니다. 연구개발인력이 전 직원의 6.7%인 1,200여명에 달한다. 박사가 19명, 석사는 456명이나 된다.
중국 지도부의 각별한 관심도 고속철 굴기에 큰 힘이 됐다. 올 7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총서기), 4월에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잇따라 이곳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했다. 공장 입구에는 ‘총서기의 지시를 받들어 중국제조의 빛나고 아름다운 명함을 만들어 내자’는 붉은 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공장 입구마다 ‘철도 교통 장비 산업에서 세계적 기업이 되자’는 구호도 나부꼈다.
중국은 고속철의 후발주자였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고속철을 생산해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 모두 16개국에 달한다. 시작은 단연 일본이 앞섰다. 이미 1964년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세계 최초의 고속철을 깔았다. 독일은 71년, 프랑스는 81년 첫 고속철을 건설했다. 중국이 처음으로 고속철을 운영한 건 고작 7년 전인 2008년이었다. 당시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과 톈진을 연결하는 중국 최초의 고속철이 개통됐다. 하지만 올 3월 기준 중국은 무려 1만7,000㎞에 달하는 고속철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고속철의 60%가 넘는다.
중국이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고속철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 건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부은 결과다. 중국은 2004년 중장기철도망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전국의 철도 운영망을 10만㎞까지 늘린다는 전략을 세웠다. 2008년에는 이를 12만㎞로 확대하고, 전국을 4개의 가로와 세로 철도망으로 연결하는 ‘4종4횡’구상을 내 놨다. 중국은 나아가 2040년까지 이를 5종6횡, 2070년에는 8종까지 늘린다는 전략이다.
장기적인 국가 계획 아래 고속철이 속속 전 대륙에 깔리면서 고속철 차량의 수요와 고속철의 건설 능력, 운영 경험 등도 자연스레 향상됐다. 그만큼 중국 고속철의 경쟁력도 높아졌다. 중국의 드넓은 국토와 다양한 기후는 중국 고속철 산업엔 훌륭한 실험실 역할을 해 줬다. 지난해 중국 고속철의 여객 수송량은 9억7,00만명에 달했다. 올해는 하루 여객 수송량도 300만명을 돌파했다. 중국은 세계 최고 속도(운영 시속 486.1㎞), 단일 최장 구간(2,446㎞), 최고 해발(해발 4,345m), 최대 한랭(영하 50도) 고속철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규모의 경제는 가격 경쟁력도 향상시켰다. 중국 고속철의 1㎞ 당 건설 원가는 2,000만달러(약 230억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유럽은 3,000만달러, 미국은 5,000만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그 동안 국내에서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 고속철 최대 수출국의 꿈을 꾸고 있다. 고속철 차량 가격도 선진국에 비해 30% 가량 낮다.
중국이 이처럼 고속철을 중시하는 것은 국가적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염두에 둔 포석일 뿐 아니라 전후방 연관 산업이 많아 경제 파급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류보(劉波) 창춘객차 기업문화부 부부장은 “시 주석과 리 총리가 잇따라 이곳을 찾은 것은 고속철을 통해 중국 전체 제조업과 장비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려는 지도부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육상 교통망과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해상 물류망을 건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새 경제권을 구축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의 중국 포위망을 뚫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의 고속철 수출은 이를 위한 선봉대가 되고 있다.
창춘=글ㆍ사진 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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