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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속철 약진 비결은 인해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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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속철 약진 비결은 인해전술

입력
2015.12.1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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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하나 조이는 작업까지 촬영하며 3인1조 작업 세 번 확인

11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에서 중국중처(CRRC) 창춘공장 직원들이 고속철 차량 하부의 나사를 조이는 작업을 3인1조로 진행하고 있다. 가운데 직원이 나사를 조이자 오른쪽 직원이 이를 캠코더로 촬영하고 왼쪽 직원은 이 과정을 모두 점검했다. 품질과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중국은 고속철 생산에서도 인해전술을 쓰고 있다.
11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에서 중국중처(CRRC) 창춘공장 직원들이 고속철 차량 하부의 나사를 조이는 작업을 3인1조로 진행하고 있다. 가운데 직원이 나사를 조이자 오른쪽 직원이 이를 캠코더로 촬영하고 왼쪽 직원은 이 과정을 모두 점검했다. 품질과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중국은 고속철 생산에서도 인해전술을 쓰고 있다.

11일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에 자리 잡은 여의도 1.7배 면적(490만㎡)의 창춘궤도객차주식회사. 연간 1,500여대의 고속철과 2,000여대의 지하철, 500대의 일반 철도 객차가 생산되는 이 곳은 최근 합병으로 세계 최대 고속철 회사로 발돋움한 중국중처(中國中車ㆍCRRC)의 심장부다. 초대형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마지막 조립만 남은 미끈한 형태의 고속철 80여대가 도열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세 명이 한 조를 이뤄 작업을 하고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열차 하부의 나사 하나를 조이는 일을 세 명이 함께 했다. 첫 번째 직원은 나사를 돌린 뒤 연결 부위를 빨간 펜으로 표시했다. 두 번째 직원은 옆에서 캠코더를 든 채 이 과정을 모두 촬영한 뒤 작업이 잘 됐다는 녹음까지 했다. 세 번째 직원은 첫 번째 직원과 두 번째 직원이 각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지를 지켜본 뒤 작업과 점검을 모두 마쳤다는 확인 스티커를 나사 옆에 붙였다. 캠코더를 든 직원에게 왜 작업을 촬영하느냐고 묻자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책임 소재도 분명히 가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들 옆에서도 또 다른 ‘3인1조’가 나사를 조이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중국은 무려 세 명을 투입,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고속철 한 대를 만드는 데 거쳐야 하는 459개 공정이 모두 이런 식으로 확인과 점검, 다시 재확인의 과정을 거친다. 2011년7월 원저우(溫州) 고속철 사고로 40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중국 고속철은 속도보다 안전을 더 중시하고 있다. 철저한 품질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은 고속철에서도 인해전술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 공장의 직원은 1만8,000여명이나 되고, 중국중처 전체 직원 수는 17만명이 넘는다.

인해전술이 가능한 건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신입 직원들의 월급은 3,000위안(약 54만원) 정도. 더군다나 이곳 직원들은 추가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왕레이(王雷) 창춘공장 설계부 부장은 “원래는 하루 8시간 근무를 하도록 돼 있지만 통상 12시간 이상씩 일한다”며 “추가 근무수당을 받는 만큼 불평하는 이는 없다”고 밝혔다.

물론 인원 수와 근무 양으로만 승부를 거는 건 아니다. 연구개발인력이 전 직원의 6.7%인 1,200여명에 달한다. 박사가 19명, 석사는 456명이나 된다.

중국 지도부의 각별한 관심도 고속철 굴기에 큰 힘이 됐다. 올 7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총서기), 4월에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잇따라 이곳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했다. 공장 입구에는 ‘총서기의 지시를 받들어 중국제조의 빛나고 아름다운 명함을 만들어 내자’는 붉은 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공장 입구마다 ‘철도 교통 장비 산업에서 세계적 기업이 되자’는 구호도 나부꼈다.

11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의 중국중처(CRRC) 창춘 공장에서 고속철의 마지막 조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공장의 면적은 여의도의 1.7배 크기다.
11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의 중국중처(CRRC) 창춘 공장에서 고속철의 마지막 조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공장의 면적은 여의도의 1.7배 크기다.

중국은 고속철의 후발주자였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고속철을 생산해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 모두 16개국에 달한다. 시작은 단연 일본이 앞섰다. 이미 1964년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세계 최초의 고속철을 깔았다. 독일은 71년, 프랑스는 81년 첫 고속철을 건설했다. 중국이 처음으로 고속철을 운영한 건 고작 7년 전인 2008년이었다. 당시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과 톈진을 연결하는 중국 최초의 고속철이 개통됐다. 하지만 올 3월 기준 중국은 무려 1만7,000㎞에 달하는 고속철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고속철의 60%가 넘는다.

중국이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고속철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 건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부은 결과다. 중국은 2004년 중장기철도망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전국의 철도 운영망을 10만㎞까지 늘린다는 전략을 세웠다. 2008년에는 이를 12만㎞로 확대하고, 전국을 4개의 가로와 세로 철도망으로 연결하는 ‘4종4횡’구상을 내 놨다. 중국은 나아가 2040년까지 이를 5종6횡, 2070년에는 8종까지 늘린다는 전략이다.

장기적인 국가 계획 아래 고속철이 속속 전 대륙에 깔리면서 고속철 차량의 수요와 고속철의 건설 능력, 운영 경험 등도 자연스레 향상됐다. 그만큼 중국 고속철의 경쟁력도 높아졌다. 중국의 드넓은 국토와 다양한 기후는 중국 고속철 산업엔 훌륭한 실험실 역할을 해 줬다. 지난해 중국 고속철의 여객 수송량은 9억7,00만명에 달했다. 올해는 하루 여객 수송량도 300만명을 돌파했다. 중국은 세계 최고 속도(운영 시속 486.1㎞), 단일 최장 구간(2,446㎞), 최고 해발(해발 4,345m), 최대 한랭(영하 50도) 고속철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11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의 중국중처(CRRC) 창춘공장에서 기관사가 완성된 고속철 차량을 시험 운전하고 있다.
11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의 중국중처(CRRC) 창춘공장에서 기관사가 완성된 고속철 차량을 시험 운전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는 가격 경쟁력도 향상시켰다. 중국 고속철의 1㎞ 당 건설 원가는 2,000만달러(약 230억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유럽은 3,000만달러, 미국은 5,000만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그 동안 국내에서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 고속철 최대 수출국의 꿈을 꾸고 있다. 고속철 차량 가격도 선진국에 비해 30% 가량 낮다.

중국이 이처럼 고속철을 중시하는 것은 국가적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염두에 둔 포석일 뿐 아니라 전후방 연관 산업이 많아 경제 파급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류보(劉波) 창춘객차 기업문화부 부부장은 “시 주석과 리 총리가 잇따라 이곳을 찾은 것은 고속철을 통해 중국 전체 제조업과 장비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려는 지도부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육상 교통망과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해상 물류망을 건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새 경제권을 구축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의 중국 포위망을 뚫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의 고속철 수출은 이를 위한 선봉대가 되고 있다.

창춘=글ㆍ사진 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11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의 중국중처(CRRC) 창춘공장에서 완성된 고속철이 시험 운행을 하고 있다.
11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의 중국중처(CRRC) 창춘공장에서 완성된 고속철이 시험 운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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