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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하며 살게요" 초인종 의인 후배들의 손편지

입력
2016.10.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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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뜻 기리는 공동수업

혹시 틀릴까 공책에 거듭 연습

엽서에 진심 고이 옮겨 적어

“교과서 속 의인이 진짜 있네요”

다음주 유가족에 전달 예정

“순수한 고백 따뜻한 위로 되길”

서울 서초구 신동초 6학년 5반 학생이 4일 오전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를 기리며 손편지를 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서울 서초구 신동초 6학년 5반 학생이 4일 오전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를 기리며 손편지를 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안치범 선배님, 잊지 않겠습니다.’

4일 오전 9시30분 서울 서초구 신동초등학교 6학년 5반 교실. 지난달 9일 발생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화재현장에서 이웃 수십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초인종 의인’ 고 안치범씨 관련 영상을 지켜보던 29명의 학생은 책상 위에 올려 둔 엽서를 두 손에 꼭 쥔 채 울음을 삼켰다. 안씨가 건물 밖으로 가장 먼저 뛰어 나온 뒤 잠시 망설이다 다시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는 겨우 참아낸 눈물을 쏟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신동초는 안씨가 15년 전 졸업한 학교다. 이곳 4~6학년 학생 740명은 이날 세상에 큰 울림을 남기고 숨진 선배를 위해 손편지를 썼다. 학교 전교회장인 유종서(12)군은 “고귀한 생명을 바쳐 의로운 행동을 한 선배님에게 감사의 글을 띄우면서 잘못된 내 행동을 돌아보게 돼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손편지 수업은 민간단체 손편지운동본부와 전북우정청, 신동초가 공동 기획했다. 어린 후배들이 안씨의 뜻을 기리며 화재 당일 영상을 본 뒤 느낀 점을 편지에 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아이들은 동영상 시청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마다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꾹꾹 글씨를 눌러 쓰며 느낀 점과 다짐을 담았다. 미리 준비한 공책에 연습 삼아 편지를 썼다가 엽서에 고이 옮겨 적는 여학생, 손바닥 크기만한 엽서에 진심을 담을 수 없어 따로 준비한 편지지에 이어 쓰는 남학생도 눈에 띄었다. 심소현(12)양은 “자신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세상에서 낯선 사람들을 구하고 기꺼이 목숨을 버린 선배님이 존경스럽다”며 “당장 쌍둥이 오빠에게 양보부터 하며 봉사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20여분 만에 엽서를 빼곡히 채운 학생들의 글귀에는 초등학생답지 않게 헌신의 삶을 본받겠다는 제법 어른스러운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권민준(12)군은 “워낙 나만 생각하는 성격이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내 몸 하나 빠져 나가기에 바빴을 것”이라며 “하늘나라에서 지켜 볼 선배님이 앞으로 이기적으로 살지 말라고 교훈을 준 것 같다”고 했다. 권군은 직접 그린 안씨의 활짝 웃는 얼굴 옆에 ‘잊지 않겠다’는 맹세도 적어 넣었다.

서울 서초구 신동초 6학년 5반 학생들이 4일 오전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서울 서초구 신동초 6학년 5반 학생들이 4일 오전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특히 아이들은 멀게만 느꼈던 ‘의인’의 존재를 피부로 확인한 것에 감동받은 모습이었다. 이희준(12)군은 “안씨 사연을 듣고 교과서에 나온 의인 이야기를 접할 때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눈물이 났다”고 썼다. 김세연(12)양도 “멀리 있을 것만 같던 의인이 학교 선배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교사들도 여느 수업시간보다 집중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미숙 교장은 “학교 현장에서 항상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가르침을 주기는 쉽지 않다”며 “인간다운 삶에 대한 지침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안씨 사례를 통해 생각하는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손편지운동본부는 학생들이 써낸 편지를 내주 중 안씨 유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고인의 아버지 안광명(62)씨는 “먼저 떠난 아들도 후배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손편지를 읽고 분명 기뻐할 것”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대표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고백이 유족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사회에는 큰 울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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