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차두리] 유로 1분도 못 뛴 '3부리거'가 영웅이 된 사연

알림

[차두리] 유로 1분도 못 뛴 '3부리거'가 영웅이 된 사연

입력
2016.06.24 04:40
0 0

유로 2016 조별리그 최고 슈퍼스타는 뭐니 뭐니 해도, 누가 뭐라고 해도 북아일랜드 공격수 윌 그릭(25ㆍ위건)이다.

그릭이 조별리그 3경기에서 뛴 시간은 ‘0’분이다. 하지만 유럽 전역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릭은 지난 시즌 잉글랜드 3부 리그 위건에서 뛰면서 25골을 넣어 팀을 2부 리그로 승격 시킨 주역이다.

윌 그릭이 세리머니하는 사진에 팬들이 불 모양을 합성해 패러디한 모습. Will Grigg on Fire 커뮤니티 SNS 캡처
윌 그릭이 세리머니하는 사진에 팬들이 불 모양을 합성해 패러디한 모습. Will Grigg on Fire 커뮤니티 SNS 캡처

그때 위건 팬들이 자신들의 스타이자 득점왕을 위해 ‘Freed from Desire’라는 곡의 가사를 바꿔서 ‘Will Grigg's on fire’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줬다고 한다. 이 노래는 유로 2016의 주제가라고 해도 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어느 나라 팬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이 노래를 부른다.

북아일랜드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독일 수비수 마츠 훔멜스(28ㆍ바이에른 뮌헨)는 기자회견에서 “경기가 끝난 뒤 꼭 윌 그릭과 유니폼을 맞바꾸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릭이 뛰는 모습은 아직 볼 수 없지만 그는 이미 유로 최고의 스타다. 궁금하시면 인터넷으로 확인해보시길. 정말 계속 듣게 될 거다. 하하.

북아일랜드 팬들도 큰 즐거움을 줬다.

그들은 경기장 분위기를 최고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90분간 정말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북아일랜드의 경기는 조금 지루하지만 분위기는 늘 뜨겁다.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는 북아일랜드 관중들. 북아일랜드대표팀 SNS 캡처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는 북아일랜드 관중들. 북아일랜드대표팀 SNS 캡처

잉글랜드에 ‘인생역전의 주인공’ 제이미 바디(29ㆍ레스터시티)가 있다면 북아일랜드에는 코너 워싱턴(24ㆍ퀸즈파크레인저스)이 있다. 워싱턴은 4년 전만 해도 우체부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던 선수다. 그가 이제는 유로 2016에서 팀을 당당하게 16강에 올려놨다. 사람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기뻐하는 북아일랜드 선수들. 북아일랜드대표팀 SNS 캡처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기뻐하는 북아일랜드 선수들. 북아일랜드대표팀 SNS 캡처

주최국이면서 우승후보인 프랑스의 드미트리 파예(29ㆍ웨스트햄 유나이티드)도 눈길을 끈다.

관리하기 힘든 선수로 악명 높았던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팀을 끌고 갈수 있는 리더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특히 개막전 결승골 뒤 교체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에는 또 하나의 슈퍼스타가 있다. 유럽의 톱 클래스 팀이 모두 주목한다는 폴 포그바(23ㆍ유벤투스)다. 대회 전부터 ‘제2의 지단’으로 기대를 모았고 프랑스 팬들은 자국을 우승으로 이끌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개막전에서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다. 거기다 알바니아와 2차전을 앞두고는 아침 식사 시간에 슬리퍼를 신고 늦게 나타나 디디에 데샹(48) 감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팀마다 다르지만 프랑스대표팀은 식사 시간에는 반드시 운동화를 착용해야 한다.

내 선수 시절을 기억해보면 1년에 2~3번은 꼭 식사, 훈련 시간에 늦거나 훈련 때 혼자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는 선수가 있다. 물론 나는 그런 적이 없다. ㅋㅋ 그럴 때마다 선수들은 배꼽잡고 박수를 친다. 감독도 대부분은 웃으며 벌금으로 대신하며 넘어간다. 하지만 데샹 감독은 대회의 중요성 때문인지 아니면 포그바를 길들이기 위해서인지 알바니아와 경기에 그를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 극약 처방의 효과는 스위스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효과를 봤다. 포그바는 다시 선발 출전했고 이전과 확실히 다른 경기력을 보여줬다. 특히 후반에 4명의 스위스 수비수들을 정교한 기술과 강한 몸싸움으로 따돌리면서 팀 동료에게 찬스를 만들어 주는 장면은 탄성을 자아냈다. 앞으로 토너먼트에서 포그바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 대표팀의 폴 포그바. AP 연합뉴스
프랑스 대표팀의 폴 포그바. AP 연합뉴스

독일도 1위로 16강에 합류했지만 득점 기계 토마스 뮐러(27ㆍ바이에른 뮌헨)가 골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는 월드컵에 두 번이나 나가 10골을 넣은 선수인데 유독 유로에서만 무득점이다. 뮐러의 득점이 언제 터질지 지켜보는 것도 16강의 재미일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유로 2016 조별리그는 실망스러운 점이 적지 않았다.

우선 경기력이 기대 이하였다.

6개 조 1ㆍ2위 말고도 3위 6팀 중 성적이 좋은 4팀도 16강에 가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경기가 굉장히 수비적으로 변했다. 자연스럽게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골도 많이 안 나왔다.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코파아메리카와 대조적으로 유로는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몇몇 국가 극소수의 팬들도 문제다. 러시아의 훌리건들은 경기 전부터 시내에서 난동을 피웠고 그것도 모자라 잉글랜드와 경기가 끝난 직후 상대 서포터석으로 넘어가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공격받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아이들도 보여 더 큰 충격과 걱정을 안겼다. 크로아티아 팬들은 경기 도중 폭죽을 그라운드에 던져 경기를 중단시켰다. 안전 요원이 폭죽을 치우다가 그 중 하나가 갑자기 터져 크게 다칠 뻔했다.

사람들이 정말 원치 않는 모습이다. 토너먼트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말부터 시작할 16강부터가 진짜 유로다. 흥미로운 경기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예선에서의 골 가뭄이 시원하게 해소되기를 기대하며.

프랑크푸르트 크론베르크에서

☞ 연재1: [차두리] “보아텡이 옆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 연재2: [차두리] 스페인이 한국축구에 던진 메시지

※ Will Grigg's on Fire

‘Freed from Desire’는 이탈리아 가수 갈라가 1996년 낸 앨범에 수록된 히트곡이다. 이 노래를 위건의 팬인 션 케네디가 위건 공격수 윌 그릭을 위해 개사한 곡이 ‘Will Grigg's on Fire’다. 특히 ‘Will Grigg's on fire, your defence is terrified’(윌 그릭이 불을 뿜으면 너희 수비는 무서워하지)라는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가사로 위건을 넘어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5월 ‘블론드’라는 듀오가 편곡을 해서 앨범을 냈고 영국 아이튠즈 차트에서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션 케네디는 이 공로로 2016~17시즌 위건 시즌 티켓을 선물 받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