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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불타고 민간인 학살… 로힝야족 인종청소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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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불타고 민간인 학살… 로힝야족 인종청소 단계”

입력
2017.09.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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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ㆍ친정부 무장단체 주도

지난주 주택 2600여채 불태워

1400명 마을서 200명 죽기도

난민 5만여명 방글라로 대피

각국 무슬림 단체 미얀마 규탄

아웅산 수치 노벨상 박탈 주장도

미얀마에서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테크나프 지역에 도착한 한 로힝야 주민이 어린이를 주머니에 담은 채 논을 건너고 있다. 테크나프=AP 연합뉴스
미얀마에서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테크나프 지역에 도착한 한 로힝야 주민이 어린이를 주머니에 담은 채 논을 건너고 있다. 테크나프=AP 연합뉴스

“내 형제는 불에 타 죽었다. 9살과 6살짜리 조카 2명은 목이 잘렸고 그 모친은 총에 맞아 숨졌다.” 미얀마 라카인주 라티다웅구역 춧핀 마을에서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의 생존자 압둘 라흐만(41)이 2일(현지시간) 로힝야 난민 지원 시민단체 포티파이라이츠를 통해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증언한 내용이다. 포티파이라이츠는 춧핀 마을의 주민 1,400명 가운데 최소 2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로힝야족이 다수 거주하는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벌어지는 민간인 학살이 ‘인종청소’의 단계에 다다랐다는 정황이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주 동안 라카인주에서만 주택 2,600여채가 불에 탔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로힝야 난민 약 5만8,600명이 라카인주를 떠나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고 발표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춧핀마을 인근 ‘체인칼리’ 마을도 화재로 인해 지역내 건물 99%가 불에 탄 상태라며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현재 외부 언론으로서는 미얀마 정부가 라카인주에 대한 언론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해 이들 증언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공격 주체에 대한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미얀마 정부 측은 로힝야측 반정부 무장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마을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지만 로힝야 난민들은 “미얀마군과 친정부 무장집단이 화재를 통해 로힝야족을 의도적으로 몰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밀려난 난민들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에 있는 나프강을 건너 치타공주 콕스바자르 일대에 설치된 임시 난민촌으로 모여들었다. 국제기구의 지원만으로는 이들을 먹여 살릴 수 없어 주변 주민의 손까지 빌려야 하는 상황이다. UNHCR 방글라데시사무소의 비비안 탄 대변인은 2일 AP통신에 “하루 새 로힝야 난민 2만명이 늘었다”고 밝히면서 “이미 난민 수용능력이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미얀마 라카인주 대학살은 지난달 25일 발생한 ARSA부대의 경찰 초소 습격에 대한 정부 측의 대응으로 촉발됐다. 미얀마 정부군은 이번 작전이 정부가 ‘벵갈리(로힝야족에 대한 정부 측 표현) 극단주의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ARSA 소탕작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 아웅 흘라잉 육군총사령관은 “(무슬림 소수파에 대한)강압적 행위는 없으며 모든 작전은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피난민 증언에 따르면 ARSA 역시 방글라데시로 넘어가려는 난민을 억류해 무장단체의 세력을 불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한 ARSA 조직원 하솀(26)은 “우리는 그들(피난민)을 죽이지도 협박하지도 않는다. 단지 ‘동기부여’를 할 뿐”이라며 “미얀마 정부군이 국경을 넘으려는 주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역 보도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난민촌으로 넘어온 몇몇 민간인들이 거꾸로 라카인주로 넘어가 ARSA에 합류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무슬림 단체들은 라카인주 학살을 이유로 미얀마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미얀마 지도자 아웅산 수치의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슬림 단체의 시위가 열렸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무슬림 단체가 로힝야 지지를 표명하고 무장집단 알카에다의 예멘지부도 미얀마 정부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로힝야족 항쟁의 ‘종교 분쟁’ 성격이 강화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작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방글라데시 정부는 미얀마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로힝야족 문제에 개입하길 꺼리고 있어, 고립된 로힝야 집단이 더욱 극단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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