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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의 희생양… 탄자니아 '하얀 흑인'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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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의 희생양… 탄자니아 '하얀 흑인'의 비극

입력
2015.03.0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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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결혼 탓 인구 1400명 당 1명 꼴

신체 일부 이용한 주술의식 횡행… 수만달러에 거래돼 살인 잇달아

유엔, 선거 앞두고 대규모 희생 경고

탄자니아 여인들이 지난해 5월 동부 다르에스살람에서 알비노 아이를 업고 걸어가고 있다. 다르에스살람=AFP연합뉴스
탄자니아 여인들이 지난해 5월 동부 다르에스살람에서 알비노 아이를 업고 걸어가고 있다. 다르에스살람=AFP연합뉴스

지난 2월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에서 두살배기 유아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아기는 사지가 절단된 상태였다. 지난 7일에도 탄자니아에서는 바라카 코스마스라는 이름의 6세 남아가 심야에 집에 침입한 괴한들에 의해 손목이 잘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알비노’였다.

‘백색증’이라고도 부르는 ‘알비노’는 멜라닌 색소를 합성하지 못해 안구 홍채가 붉은색을 띄고 피부와 머리칼이 하얀 증상을 말한다. 이 증상을 가진 사람은 피부색에 관계 없이 표가 나지만 흑인의 경우 더욱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탄자니아를 비롯한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이용해 주술적 의식을 행하면 행운과 재물이 따른다는 미신이 퍼져 있다는 점이다. 잇따른 알비노 살해 사건도 이 같은 잘못된 믿음 때문에 발생한다.

탄자니아에서는 2000년 이후 75명 이상의 알비노가 이런 미신에 희생됐다. 적십자에 따르면 주술사들은 알비노의 신체를 1구당 7만5,000달러에 사들인다고 한다. 탄자니아의 인구당 알비노 비율은 1,400명 당 1명. 서구의 2만명 당 1명이라는 비율에 비해 매우 높다. 탄자니아에서 알비노 환자가 심하게 많은 것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근친결혼을 이유로 들고 있다.

살해 위험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알비노들은 곳곳에 모여 살고 있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탄자니아 북부의 외딴 섬 우르케웨에도 70명 남짓 알비노 환자들이 모여 사는 셍게레마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셍게레마에는 알비노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상이 있고, 바닥에는 139명의 희생자 이름을 새긴 추모 명부가 있다.

하지만 이런 피난처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린 알비노 아들을 둔 나미감보는 최근 집을 비운 사이 아이가 피습 받은 이야기를 BBC에 털어놨다. 아내가 알비노인 아이를 안고 허둥지둥 도망쳐 위기를 모면했다. 집에 남아 있던 알비노가 아닌 아이들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알프레드 카폴 탄자니아 알비노단체 대표도 살해 위협을 받았다. 마샤카 베네딕트 세렝게마 알비노 단체장은 “어려운 사람이 어떻게 (알비노 신체 대금으로)수만 달러를 지불하겠는가”라며 “알비노 살해에는 사업가와 경찰공무원 등 부유층이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은 올 연말 탄자니아 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치인이 알비노 주술을 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미 경고했다. 탄자니아 정부도 지난 1월 주술사의 주술행위를 전면 금지했다.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은 지난 3일 월례 TV연설에서 “알비노 살인이 갑자기 늘어난 데 비통을 금할 수 없다”며 잔혹한 방식의 주술과 미신은 악행을 더할 뿐이므로 정부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알비노 살해 근절에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탄자니아 법원은 지난 5일 22세의 알비노 여성 살해 혐의로 기소된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살해 혐의자 중에는 숨진 여성의 남편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단속 의지에도 불구하고 알비노들의 처지가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탄자니아 경찰은 수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대부분의 알비노 사건이 전력도 공급되지 않는 외딴 지역들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밤에 범행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파악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경찰이 이렇게 말하는 건 당국의 수사로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지난 2일 탄자니아 알비노 연합회는 알비노 살해 근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궁으로 행진을 계획했으나 경찰 당국은 집회를 불허했다. 탄자니아의 알비노들은 대다수 주민들이 제발 미신에서 벗어나기만을 지금도 기도하고 있을 따름이다.

박병준 인턴기자(서강대 정치외교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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